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정치 빙하기' 맞은 한국정치

송주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6 17:48

수정 2019.12.16 17:48

[기자수첩]'정치 빙하기' 맞은 한국정치
불발·결렬·난항. 최근 국회를 집어삼킨 단어들이다. 민주화 이후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고, '집권여당'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던 민주당과 한국당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협상력 부재'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협상이 결렬되거나 난항을 겪으면 여지없이 상대 당에 대한 말폭탄만 쏟아내고 있다. 원내교섭단체 회동과 당대표 모임인 초월회는 공회전을 반복했다. 실무기능을 강화한 정치협상회의는 실체조차 묘연한 상태다.

민주당은 상황이 꼬이자 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 구성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제1야당 대표 최초로 삭발투쟁과 단식에 나서며 결사항전 의지를 다졌다. 여야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협상공간 자체를 죽여버렸다.

협치의 붕괴는 군소정당에도 책임이 있다. 원내 1당과 2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3당인 바른미래당은 물론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군소정당은 정국의 향배를 결정할 키를 쥐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자당의 이익만 우선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치개혁' '사법개혁'이라는 보기 좋은 명분을 내세우며 '양보 없는 싸움'을 걸고 있다. 협상이 틀어지면 '기득권' '오만' 등 날 선 단어를 쏟아내며 협의체 결렬을 공공연히 겁박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 상대를 반드시 쓰러트리거나 즈려밟는 문화가 횡행한 '정치 빙하기'가 도래한 듯싶다.
말이 안 통하면 상대방을 탓하며 대화의 창을 닫아버리는 것이 한국 고유의 정치문화가 된 듯싶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9월 "김대중·김영삼 시대에 보여줬던 협치의 정신은 대화와 타협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탄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적장자를 자임하는 거대정당에 과연 협치란 무엇일까. 새로운 정치를 지상과제로 제시한 군소정당들에 협치는 또 어떤 의미일까. 무너진 한국 정치의 복원은 가능할까. 냉정히,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절대 불가능해 보인다.

juyong@fnnews.com 송주용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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