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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포노사피엔스 시대, 혁신기업의 엑소더스를 보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6 17:57

수정 2019.12.16 17:57

[fn논단]포노사피엔스 시대, 혁신기업의 엑소더스를 보며
우리 국민은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디지털 시대인 만큼 데이터는 알고 있다. 일단 스마트폰 사용비율은 95%를 넘어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모바일뱅킹 이용비율은 2018년 12월 기준 63.5%로 절반을 훌쩍 넘었고, 카카오뱅크는 출범 2년 만에 1000만명 넘는 고객을 모았다. 저녁 7시 이후 보는 영상의 57%를 유튜브가 차지하면서 TV는 27%로 뚝 떨어졌다.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하는 금액은 15조원으로 무려 30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한달에 5000만건 이상 배달을 시키고 있다. 의류 소비도 이미 30% 이상을 스마트폰에서 구입한다.
집을 구할 때도 직방이다 다방이다 앱으로 찾는 것이 기본이다. 지식을 학습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궁금한 일이 생기면 누구한테 묻는 게 아니라 폰으로 검색한다. 그것도 진화해서 이제는 유튜브 검색, 영상기반 지식학습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우리나라 표준 소비자는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해결하는 포노사피엔스다. 그렇다면 사회의 법과 제도, 사회에 대한 인식도 여기에 맞춰 바꿔야 한다. 여기 혁신성장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배달의민족이 독일계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에 역대 최고액인 4조8000억원에 매각되면서 놀라움과 함께 아쉬움을 남겼다. 글로벌기업의 공격에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1등을 유지하던 배달의민족은 글로벌시장 진출을 위해 결국 해외로 본거지를 옮겼다. 이런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스타일난다는 로레알에 6000억원에 매각됐고 AHC는 유니레버에 3조4000억원에, 닥터자르트는 에스티로더에 2조원에 팔렸다. 예전 같으면 이들이 아모레퍼시픽, 코리아나화장품 등으로 성장했을 기업들이다. 게임기업 넥슨도 올해 매각을 발표해 업계를 경악하게 했다. 이들 기업 모두 디지털문명에서 성장한 기업들이다. 한창 성장해야 할 기업들이 매각을 결정하는 이유는 뭘까. 글로벌 플랫폼기업들이 크게 성장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성장에 한계를 느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힘들게 하는 건 이들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권력의 횡포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는 자영업자를 착취한다며 수시로 국회에 불려다녔고, 넥슨의 김정주 대표도 게임에 대한 정치인들의 나쁜 선입견으로 사업확장에 한계를 느꼈다고 토로한다. 타다의 이재웅 대표는 검찰에 기소돼 재판 중이고, 정치인들은 법을 바꿔 아예 더욱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포노사피엔스 신문명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 당연히 기존 사업에는 피해가 발생한다. 유튜브가 확산되면 지상파는 적자에 허덕이고, 온라인 의류쇼핑이 증가하면 동네 가게는 매출이 준다. 은행 지점이 폐쇄되고 대형마트는 어려워지며 기존 일자리는 모두 크게 위협받는다. 그래서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규제를 만들어 보호받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규제가 더 이상 표준 소비자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 규제장벽은 혁신기업들을 지치고 힘들게 만들어 이 땅을 떠나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이 취업해서 신나게 일할 기업들은 결국 모두 사라져버리고 규제와 법으로 보호받는 기업들만 남게 된다. 철 지난 규제로는 단 한 개의 일자리도 만들 수 없고, 혁신기업의 엑소더스를 부를 뿐이다.
우리의 미래청년, 그들이 진짜 신나게 일하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주자. 푼돈 쥐여주고 표 살 생각하지 말고, "라떼는 말이야" 외치며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저 공정한 운동장이라도 열어주자. 미국에서, 중국에서, 동남아에서 이미 다들 하듯이 말이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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