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배짱맨 마크롱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6 17:57

수정 2019.12.16 21:57

노동·공공 개혁에 이어
민감한 연금에도 손 대
한국은 '연'자도 못 꺼내
[곽인찬 칼럼]배짱맨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하면 척 떠오르는 인물은 샤를 드골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프랑스 제5 공화국의 주춧돌을 놓은 정치인, 미국과 맞짱을 뜰 만큼 배짱 큰 위인이 바로 드골이다. 그런데 요즘 내 머릿속 드골의 위상이 흐릿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그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2017년 5월 취임했으니 5년 임기에서 반환점을 돌았다. 오는 2022년 재선에 성공할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마크롱은 지난 2년7개월 재임만으로도 드골 못잖은, 아니 드골을 넘어서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7년생이니 아직 마흔두살밖에 안 됐다. 마크롱은 패기를 앞세워 프랑스를 뜯어고치고 있다. 취임 첫해엔 노동개혁에 주력했다. 해고도 쉽게, 고용도 쉽게 바꿨다. 노조가 들고 일어났지만 마크롱은 꿈쩍도 안 했다. 전임 대통령들도 노동시장을 바꿔 저성장·고실업이라는 프랑스병을 고치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노조라는 거대한 장벽에 부닥쳤고, 결국 주저앉았다. 마크롱은 달랐다.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개혁안을 밀어붙였고 성공했다.

취임 이듬해엔 철도노조와 세게 붙었다. 마크롱은 프랑스 국철(SNCF)의 종신고용제를 폐지하고 복지 혜택을 대폭 줄였다. 강성 철도노조가 파업으로 맞섰지만 마크롱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2018년 11월 유류세 인상 발표로 촉발된 노란조끼 시위는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다. 유류세에 대한 불만은 마크롱의 친기업, 부자감세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다. 그러자 마크롱은 무려 2330자에 달하는 장문의 대국민 서한을 발표했다. 프랑스의 미래를 놓고 온 국민이 타운홀 미팅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마크롱은 끝내 공약에서 후퇴하지 않았다.

취임 3년째인 올해는 더 어려운 일, 연금개혁에 도전했다. 어떤 정치인도 연금에 손대는 걸 꺼린다. 유럽 재정위기처럼 온 국민이 공감하는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연금은 깎지 못한다. 오래전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가 말했다. "사람은 자기 소유물을 빼앗겼을 때보다 부모가 죽은 쪽을 더 빨리 잊는 법이다." 다시 말해 재산을 빼앗기면 죽어도 잊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감히 마크롱이 나섰다. 사실 프랑스 연금제도는 엉망진창이다. 업종·직장별로 가짓수가 42개나 된다. 철도 따로, 지하철 따로, 광부 따로, 교사 따로 식이다. 은퇴 나이, 연금 수령액 계산법도 제각각이다. 누군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와 은퇴 전 6개월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연금을 넉넉하게 받는다. 누군 정년(62세)까지 일한 뒤 소득이 높은 25년간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연금을 빠듯하게 받는다.

분명 연금 특혜층이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공공부문이 유리하다. 마크롱은 42개 연금을 하나로 통일하자고 말한다. 누구나 일한 만큼 공평한 연금을 받는 것이 프랑스혁명의 평등 정신에 어울린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들고 일어났다. 지금보다 일은 더하고 연금을 덜 받을까봐 걱정이다. 마크롱은 연금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무쇠 마크롱이라도 연금 삭감은 쉽지 않다. 하지만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지든 이기든 마크롱의 배짱만큼은 참 부럽다. 우린 연금개혁의 '연'자도 꺼내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그런 연금개혁이 과연 가능할까. 내년 봄 총선을 앞둔 국회는 연금 숙제를 서랍 속에 처박았다.
총선 끝나면 금방 대선 정국인데 과연 숙제를 할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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