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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재무학회칼럼]한·일 무역분쟁과 군중의 지혜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7 17:33

수정 2019.12.17 17:33

[한미재무학회칼럼]한·일 무역분쟁과 군중의 지혜
2019년 7월초. 일본이 한국에 경제제재를 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다. 필자는 태국에서 열린 한 학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한국 재무 교수들과 국가경제 걱정을 하게 되었고 한국 대표 반도체기업들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갑론을박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바로 삼성전자 등 반도체기업의 주가를 확인했다. 이게 웬일인 걸까. 이들 기업의 주가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필자는 당시 바로 예견했다.
일본 경제제재는 한국 반도체기업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식시장의 무덤덤한 반응은 필자로 하여금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필자의 전공은 재무경제학이다. 반도체산업의 복잡한 글로벌 유통구조를 알지 못한다. 첨단공학적 사실도 모른다. 하지만 재무경제학자로서 확실한 것이 있다. 바로 주식시장이 가지는 '군중의 지혜'로서의 역할이다.

군중의 지혜란 무엇일까? 소수 전문가의 의견보다 다수 군중의 의견을 종합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법칙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오히려 더 부정확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자신감과 선입견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수많은 군중의 여러 다양한 의견을 결집하면 훨씬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이는 통계학에서 말하는 대수의 법칙에 근거한 것으로, 다수 의견의 결집이 오차범위가 가장 작은 예측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군중의 지혜는 이론적 근거는 물론 수많은 실제 사례에서 검증되었다. 유명한 예로 19세기 영국 프랜시스 갈튼 경의 일화가 있다. 한 마을의 가축시장에서 황소의 무게를 맞히는 행사가 벌어졌는데, 전문가의 능력을 믿던 갈튼 경의 예상과는 달리 787명 참가자 중 그 누구도 정답을 맞히지 못한 반면 그 787명의 답안의 평균이 정답과 거의 일치했다는 일화다. 찰스 다윈의 조카이자 우생학의 창시자로, 대중은 어리석기에 우월한 유전자의 소수 엘리트가 사회를 지도해야 한다고 믿었던 갈튼 경의 패배였던 셈이다.

그럼 주식시장에서 군중의 지혜가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전자와 같은 대형주의 주가는 전 세계 각지의 다양한 투자자들의 견해의 반영이다. 무수히 많은 경로의 다양한 정보가 비교적 편견 없이 반영된다. 물론 개중에는 묻지마 투자도 있을 것이며, 일본 제재 소식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의 잡음은 대수의 법칙에 의해 소멸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주식시장은 미래가치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정보가 결집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없다. 오직 자기 돈이 걸렸다는 지극히 본능적 목적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편견 없는 견해들이 총체적으로 집결되면서 시장 가격은 놀랍도록 정확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필자도 최근 미국 톱 재무학술지인 '저널 오브 파이낸셜 이코노믹스'에 출판한 연구에서 군중의 지혜를 검증했는데, 이에 따르면 주식 및 채권 펀드 투자자자들의 종합적 선택을 분석함으로써 가장 정확한 경기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과의 무역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사태가 전개될지 아직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경제제재의 영향과 대응에 대한 전문가들의 많은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군중의 지혜가 그 어떤 전문가보다 정확할 것이라고 본다.
군중의 순수함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최재원 美일리노이대·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약력 △42세 △서울대 학사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석사 △뉴욕대 스턴스쿨 재무박사 △일리노이대 경영학과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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