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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해외건설 '양보다 질'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23 17:13

수정 2019.12.23 17:13

[fn논단]해외건설 '양보다 질'
올해 해외건설 수주실적은 200억달러에도 못미칠 것 같다. 작년에 321억달러를 기록했기 때문에 올해도 300억달러를 넘어서리라는 기대가 많았다. 수주실적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올해 한국 건설업체들이 진출한 국가 수는 작년 106개에서 99개로 줄었고, 진출업체 수도 386개에서 370개로 줄었다. 최초로 외국에 진출한 업체 수도 작년 50개에서 36개로 줄었다. 줄곧 해외건설 활성화를 추진해온 정부로서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의외로 해외건설업계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수주실적이 저조하다고 해서 수주목표를 다시 높게 잡고 수주확대를 다그치는 분위기도 아니다. 이미 2010년대 초반에 과잉수주와 부실수주로 인한 후유증을 호되게 겪었기 때문에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익성 위주의 선별수주'가 지속가능한 해외건설 사업전략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게다가 대형건설업체들은 최근의 주택사업 호황으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건설 수주확대를 추진해야 할 필요성도 없다. 지금이야말로 주택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오랫동안 누적된 해외건설사업의 부실을 털어내면서 조직과 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때다.

정부의 해외건설 지원정책도 수주확대와 같은 양적 목표만 강조할 일이 아니다. 기존의 지원정책이 제대로 성과를 내고 있는지부터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우리 해외건설업체들이 단순시공 중심이고, 금융경쟁력이 미약하다 보니 투자개발형사업이나 민관합동사업(PPP)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에 따라 금융지원 강화에 주력해왔다. 작년에는 '해외인프라 도시개발지원공사(KIND)'를 설립했고 올해는 총 6조원에 달하는 '해외수주 정책금융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최근에도 초고위험국 프로젝트의 수주지원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물론 금융을 동반한 대규모 해외사업 수주는 정부지원이 있다고 해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지원정책의 성과를 논하기는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하지만 2년 뒤에도, 3년 뒤에도 성과가 없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해외건설 수주가 부진한 근본적인 이유는 글로벌 경쟁력 부족이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개념설계 역량이나 금융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지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계약과 클레임 관리 역량도 대단히 부족하다. 해외건설 시장정보는 외국 기관들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자체 리스크관리 전문인력은 양성하고 있지도 않다. 경험 있는 해외건설사업 관리인력도 부족하고, 해외발주처가 요구하는 일부 특수전문인력(성평등 관리자 등)은 우리 건설업계에 전무하다. 최근 들어서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외발주처가 내거는 입찰조건을 충족하기도 어렵다.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부르는 시대착오적인 규제가 국내 건설산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건설업체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배양할 수도 없다. 해외건설의 경쟁력은 한두가지 단편적인 대책만으로는 높아지지 않는다.
수주와 같은 양(量)이 아니라 수익성을 근간으로 하는 질(質)적 차원에서 시스템 역량을 정비해야 하고, 제대로 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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