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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규제의 덫에 치인 투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24 16:48

수정 2019.12.24 16:48

[fn논단]규제의 덫에 치인 투자
기업들이 투자에 매우 소극적이다. 한국경총의 2020년 경영전망 조사와 같이 대다수 기업이 현 경기상황을 '장기형 불황'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 다음으로 정부정책도 경영애로 배경으로 꼽혔다. 규제강화와 노동정책이 부담으로 지적됐다. 한편 대한상의는 신산업이 여러 정부기관의 복합규제를 받아 혁신적 기술과 서비스산업 육성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규제철폐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수없이 강조됐다.
규제개혁은 시간문제로 여겼지만, 저해요인도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입법 주도권에서 국회가 행정부를 압도했다. 규제개선 기회는 많아졌지만 동시에 표의 포퓰리즘에 좌우될 위험성도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규제보고서(2017년)에서 규제의 질을 높일 심사분석 기능이 약화될까 우려했다. 공무원은 규제완화가 야기할 수 있는 시장실패 책임을 과도하게 인식하며, 애매한 법령규정은 공무원의 규제본능을 자극한다. 그리고 양극화와 반기업 정서도 규제개혁에 적지 않은 제동 역할을 한다.

규제는 4차 산업혁명 촉진에 걸림돌이 됐다. 최근 국회 문턱에 걸린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신용정보·정보통신망법)이 대표 사례다. 이 법의 골자는 비식별 개인정보를 공익 또는 학술 연구 등의 목적에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설령 이 법이 통과돼도 관련 산업법 손질 없이는 제 역할을 못한다. 디지털산업의 원유 격인 빅데이터 활용이 정지된 셈이다. 인프라 구축이 지체되면서 기술력 축적은 빈약해져 관련 산업들이 일본과 중국에 추월당했다.

규제는 선의로 출발한다. 단순한 잘못을 해소하려고 법안을 성안하고, 각종 규정을 만든다. 사회가 발전하고 관련 산업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상호작용이 일어나 법안 페이지 수는 확장된다. 미국 정치학자인 허버트 카우프먼은 누군가를 위한 보호장치는 누군가에게는 과도한 행정절차이며, 규정이 늘면 사회발전은 지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규제 역풍을 생각할 때다. 규제는 서류 작성, 인허가 등 많은 실무적 절차로 기업 업무를 지연시키고 어렵게 만든다. 청년세대의 창업이 규제로 정체되면 출산율 저하와 높은 상관성을 갖는다는 유럽공동체의 연구자료(2014년)가 시사하는 바다. 규제 프레임으로 근로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면서 혁신을 진작하고 성장을 촉진하기는 어렵다. 법률가와 행정가가 급변하는 복잡계 경제를 뒤따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규제개혁 최고 전문가인 만델은 수치로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규제는 부분적으로 저성장과 연관돼 있다고 주장한다.


사익지향과 공익추구 간에 선순환 생태계가 필요하다. 규제는 장기화될수록 부작용이 늘며, 규제차익을 역이용하려는 심리까지 유발해 규제의 합목적성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규제의 사회적 순효과가 긍정적인 테두리 내에 머물도록 규제개혁 심의기능을 민간기구에 위임하자. 선진국형 규제방식인 '하지 말 것'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시장의 선택에 맡기며, 신산업도 '선허용·후규제'로 정착시키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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