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송경진의 글로벌 워치]性 격차 해소에 무관심한 정치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26 17:19

수정 2019.12.26 17:19

[송경진의 글로벌 워치]性 격차 해소에 무관심한 정치권
매년 12월 기다려지는 보고서가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다. 경제활동 참여 및 기회, 교육성취, 보건·수명 및 정치세력화와 미래 직업에서 성 격차를 측정·추산한다. 올해 153개 조사대상국의 성 격차 해소에는 99.5년, 한·중·일이 속한 동아시아는 139년이나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정치 분야의 더딘 진전이 큰 원인이다. 경제 부문은 작년 추산 202년보다 퇴보해 257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는 남성의 절반도 안 된다. 여성 이사의 비율은 2.1%로 일본(5.3%)에도 한참 뒤지는 세계 꼴찌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여성의 경제·사회 진출 확대가 필수라는 주장과 달리 현실은 달팽이보다 느리다. 일자리가 많은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 여성의 낮은 진출로 인해 경제활동 참여 기회로 이어지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공학박사 과정에서 여성 비율은 단 14.1%다. 성 불균형이 성 고정관념과 격차를 악화·영속화할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인공지능(AI) 전문가들은 AI의 성 편견을 지적해왔다. 성 편견을 걸러내진 못한 기존 데이터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구글의 인공지능 '버트(BERT)'에게 '보석' '아기' '돈' 등 100개의 단어를 입력하자 '엄마'라는 단어 외 99개는 남성과 연계했다는 충격적 결과도 있다.

여성의 경력단절 감소대책으로 가족친화인증기업 제도가 있다. 2017년 2800개 기업에서 2018년 3328개로 늘어났지만 민간기업 참여가 저조하고, 대중의 인지도나 관심이 낮은 현실적 문제가 있다. 정책이 탄력을 받으려면 추진요인이 중요하다. 가령 가족친화인증기업으로 선정되면 5년간 한시적 세액공제, 일부 세금환급 등 세제혜택을 고려할 수 있다. 기업의 변화는 소비자에게 달려 있다. '가족친화인증기업 제품 우선 선택' 소비자운동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분야보다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더 아쉽다. 성 격차 지수는 0.672(1점 만점)인데 정치세력화는 0.179에 불과하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로 세계 평균(25%)보다 훨씬 낮다. 정치권이 여성의원 수를 줄이는 결과로 귀결될 석패율제도 논의를 포기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여성할당제를 공약한다. 한 번도 지킨 적은 없다. 생각도 의지도 없는 듯하다. '적절한 여성을 찾기 힘들다' '지역구는 험지라서 정치 무경험 여성을 공천하기 어렵다' 등 너무 뻔한 이유를 댄다. 여성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널리 찾지 않은 결과다. 정치권은 인재가 풀뿌리부터 경험하면서 정치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시스템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여당의 586세대가 매우 남성중심적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내·외부에 있다. 오해에 불과하고 성 격차 해소에 진정성이 있음을 증명하려면 '30% 여성할당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TV에 얼굴 몇 번 비쳤다고 공천하는 기본도 룰도 없는 공천은 역사로 남기자. 많은 권한이 부여된 정치권이 단계별 계획을 세워 차세대 정치인재 양성시스템을 구축하고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으로 성 격차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송경진 FN 글로벌이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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