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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윤중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2013년 12월 제너럴모터스(GM)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메리 바라는 GM의 제품 안전성에 치명적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사의 차량 점화스위치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차량 200만대를 리콜했고, 차량사고로 최소 126명이 숨졌다. 당시 GM의 경영구조는 일명 '기업사일로'들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 것이 문제였다.

상호 간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고, 불리한 정보는 윗선으로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관료제의 분류체계 속에 생각과 행동이 막혀버리는 '사일로' 현상에 포위됐다. 수십년에 걸쳐 자동차 생산에 몰두하던 GM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투자를 통한 품질과 안전관리는 뒷전인 채 금융자회사를 만들어 단기수익 내기에 급급해서다. 기가 막힌 것은 이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GM 직원들이 자동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재무상태만 체크하는 단편적 경영방식이 회사 문화를 지배하면서 제조업 본연의 기술력을 외면한 탓이다.

최근 물러난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회장 겸 CEO도 비용절감의 후폭풍을 견디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그는 1985년 보잉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34년간 보잉에서만 일한 뼛속까지 '보잉맨'이다. 그런 그도 결국 지나친 비용절감과 무리한 설계변경의 역풍을 이겨내지 못했다.

혁신과 성장담론이 넘쳐나지만 기업들의 행보는 정반대다. 혁신에 걸맞은 변화는커녕 비용절감을 통한 보여주기식 수익창출을 마치 혁신인 것처첨 과대포장하고 있다. "측정하라. 그러면 관리될 수 있다"는 모토가 온 사회를 열병처럼 휘감고 있다. 관리와 측정을 생명으로 하는 포트폴리오 사회의 민낯이다. 이 모든 중심에는 금융화가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초창기 핵심이론가로 꼽히는 해리 마코위츠의 계량 금융방법론은 그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줬지만 후일 자본시장을 지배하는 컴퓨터 차익거래의 초석을 놓았다. 오늘날 금융거래는 대부분 차익거래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금융상품 거래를 수행하면서 금융화는 빛의 속도로 포트폴리오 사회를 촉진한다.

최근 혁신기업의 대명사인 애플이 금융부문을 키우고 있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과 중국 휴대폰업체들이 5G 등 기술혁신을 이루는 동안 애플은 혁신을 외면했다. 되레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했다. 세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애플이 이런 금융공학적 기법 개발과 이를 이용한 가치창출에 나선 것은 애플의 미래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징후다. 거대한 금융화의 물결은 인간의 수명까지 관리하고 측정할 정도로 지배적 관리체계로 똬리를 틀었다. 사실 미국 제조업의 몰락은 트럼프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과 중국 제조업체들의 물량공세가 아니다. '메인가'로 대표되는 제조업 영토가 금융가인 '월가'에 점령당해서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은 멍청한 지도자들의 착각이다.

2004년 이후 미국 제조기업들은 무려 7조달러를 쏟아부으면서 자사주를 사들였다. 무려 수익의 절반 규모다.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부양은 제조기업들의 최우선 경영목표다. 기업들이 앞다퉈 금융공학에 빠져드는 것은 회사 성장에 필요한 연구개발이나 직원교육 등 진정한 투자를 하지 않고도 수익창출이 가능해서다. 포트폴리오 사회의 전면화는 제조업 붕괴의 서막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