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피그말리온 경제학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27 17:07

수정 2020.01.27 17:07

조각품이 여인으로 변신
신화에나 어울리는 얘기
경제는 소망으로 못 풀어
[곽인찬 칼럼] 피그말리온 경제학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여혐(女嫌) 조각가였다. 그런데 자기가 상아로 만든 여인상에 그만 홀딱 반했다. 그는 상아여인을 제 아내처럼 애지중지했다.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이 그의 염원을 들었다. 여신은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피그말리온이 입을 맞추자 조각상에 온기가 퍼졌다.
둘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여기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이 나왔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피그말리온 신화가 떠오른다. 간절히 바란다는 뜻에서다. 포용성장은 문 대통령이 빚은 상아 조각품이다. 혁신을 함께 말하지만 J노믹스의 고갱이는 역시 더불어 사는 포용이다. 당연히 애착도 강하다. 누가 뭐라든 문 대통령은 한국 경제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포용정책 덕에 고용도 좋아지고 소득분배도 나아졌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마치 자기실현적 주문을 외는 듯하다.

강공 일변도의 부동산정책도 무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18번에 걸친 잗단 대책이 되레 집값을 올려놓았지만 오로지 돌격 앞으로다. 대책을 써서 부작용이 생기면 보완책을 내놓고, 거기서 또 부작용이 생기면 새 대책을 내놓는다. 이 다람쥐 쳇바퀴를 5년 내내 돌릴 것 같다.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염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은 촛불정부의 무오류성을 믿는 것 같다. 우리가 옳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전제로 정책을 짠다. 좋게 보면 신념이지만 달리 보면 아집이다.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이 2%에 그쳤다. 4·4분기에 재정을 쏟아부은 덕에 간신히 2%에 턱걸이했다. 성장률이 절대선은 아니다.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장률이 떨어지면 서민이 먼저 타격을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업이 인건비를 줄이면 비정규직이 1순위다. 부자들은 견딜 만하다. 외환위기 때 보듯, 돈 많은 이들은 급매로 나온 집과 땅을 헐값에 후려치는 재미도 있다.

박근혜정부는 3% 성장을 지키느라 안간힘을 썼다. 문재인정부는 2%도 벅차다. 서민을 위한다는 문 정부에서 서민이 더 힘들어 한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원래 경제가 그렇다. 냉정하기가 얼음장처럼 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보면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목포상고를 나온 김대중은 목포에서 제법 큰 해운회사를 운영한 적도 있다. 문정부엔 서생만 가득하고 상인은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은 또 "국민의 손을 잡고 반걸음만 앞서가라"고 했다. 그는 참여정부가 편 정책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뜀박질은 실패를 향한 돌진에 다름 아니다"라고 경계했다. "목적이 정의롭고 고상할수록 '국민과 함께'라는 원칙을 더욱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정책 속도를 반 템포 정도 늦추면 좋겠다. 지금은 국민보다 한 걸음 앞서 달리는 것 같다. 고상한 뜻엔 공감하지만 따라가기가 벅차다. 양극화로 쩍 갈라진 한국 사회에서 포용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누가 이를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브로콜리가 몸에 좋아도 억지로 먹일 순 없는 노릇이다. 신화 속 피그말리온은 간절한 소망을 이뤘지만 경제는 신화와 다르다. 한 방에 해결할 아프로디테 여신도 없다.
문 정부가 출범한 뒤 연간 성장률은 3.2%→2.7%→2%로 추락 중이다. 뭔가 단단히 잘못 굴러가고 있다.
정부 정책이 피그말리온 경제학이 되어선 안 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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