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한미재무학회칼럼

[한미재무학회칼럼] ‘그릿’과 ‘노오력’ / 김회광 美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교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1 09:03

수정 2020.02.11 09:03

최근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용어 중 하나가 ‘그릿(Grit)’이다. 성장(Growth), 회복(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ernal Motivation), 집념(Tenacity)을 합친 말로, 역경에 굴하지 않고 뜻한 바를 이루려고 하는 태도를 말한다. 펜실베니아대학 심리학과의 안젤라 덕워스 교수가 고안했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개념이다. 우리말로는 집념, 끈기, 불굴의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릿이 인기를 끌게 된 요인에는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학업성취, 경제적 성공, 개인적 삶의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 한몫한다. 인지능력같은 선천적 요인보다 성격이나 행동적 요인에 성공의 열쇠가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릿을 어린 시절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학계의 톱저널 중 하나인 ‘계간 경제학저널(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출판된 논문이 그릿을 키우는 실험에 관한 것이다. 영국 에섹스대학의 수 앨런 교수 및 동료 연구자들이 터키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인데, 연구자들은 무작위로 선정된 실험군 아이들에게 “능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노력으로 키울 수 있다”고 교육시켰다. 대조군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이후 학생들에게 어렵지만 큰 보상이 따르는 문제와 쉽지만 작은 보상이 따르는 문제를 선정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대조군 아이들은 주로 쉽지만 작은 보상이 따르는 문제를 선정한 반면, 실험군 아이들은 어렵지만 큰 보상이 따르는 문제를 선정해서 풀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 재미있는 결과는 어려운 문제를 선정한 실험군 아이들 중 상당수가 처음엔 실패를 경험했지만 대부분 포기하지 않고 일주일 이후 더욱 노력해서 결국 문제를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반적인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더욱 높은 점수를 얻었다. 결국 “노력이 선천적 능력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큰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실패에 대한 인식에도 차이를 만들어 낸다. 노력이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삼겠지만, 능력은 그냥 주어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실패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증명이 된다. 결과적으로 노력의 효과를 믿는 자들만이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삼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분명 그릿의 태도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면이 있고, 실패가 더욱 노력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릿을 길러주기 위해 실패를 일부러 맛보게 할 수는 없다. 다만 실패를 맛본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적, 국가적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실패의 결과가 삼키기 어려울 만큼 쓴 경우가 분명 있다.
그러나 실패를 겪은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 그들이 나중에 이룰 수 있는 더 큰 열매를 우리는 너무나 쉽게 평가절하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릿이 ‘노오력’으로 희화화되는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분명 우리가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가 선천적인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차이를 절대 좁힐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에서 젊은이들은 그릿을 비웃고 결국 장기적인 성장을 포기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끈기가 없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