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스트리트

[fn스트리트] 균(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2 17:11

수정 2020.02.02 17:11

인류문명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미국 UCLA대)는 역저 '총, 균, 쇠'로 퓰리처상(1997년)을 받았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됐는지 원인을 파헤친 책이다. 총, 쇠는 금방 알겠는데 균이라니? 균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만드는 데 무슨 일을 했길래.

알고 보니 대단한 기여를 했다. 유럽대륙은 가장 앞서 농경사회를 이뤘다. 소, 돼지, 닭, 양 같은 가축과 함께 살았다. 동물이 전염병의 원천이다.
유럽인들은 동물이 퍼뜨린 세균 때문에 고생도 했지만 내성도 키웠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러지 못했다. 1531년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부하 170명을 데리고 수백만 인구를 가진 잉카제국 정복에 나섰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피사로가 페루 해안에 상륙했을 때 무시무시한 행운이 따랐다"고 말했다. 이미 5년 전쯤 육로로 들어온 천연두가 잉카족 대부분을 몰살시켰기 때문이다.

농경사회는 전염병의 숙주 노릇을 했다. 사람이 한곳에 모여 살아야 균을 퍼뜨리기가 쉽다. 균이 더 반긴 것은 도시다. 사람이 오밀조밀 모인 데다 위생은 형편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행운은 교역로의 발달이다. 14세기 유럽을 뒤흔든 흑사병은 "중앙아시아로부터 벼룩이 우글거리는 모피들이 유라시아의 동서 축을 따라 유럽으로 신속하게 운반되었다." 지금은 세균의 대륙 간 이동 시대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한국, 일본은 물론 미국, 유럽, 호주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천연두는 서기전 1600년쯤, 한센병은 서기전 200년쯤, 소아마비는 1840년, 에이즈는 1959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또 어떤 균이 인류를 괴롭힐지 모른다. 21세기에도 도시화는 대세다. 한국인은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다닥다닥 붙어산다.
각자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세균만 살판나게 생겼다.
균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혜안이 오히려 섬뜩한 요즘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