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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월요묵상] 인간의 오만과 무지에 펼쳐진 비극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아'(Jeremia treurend over de verwoesting van Jeruzalem),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1606–1669), 상수리 나무 패널 위 유화, 1630, 58x46㎝,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국립 미술관.© 뉴스1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아'(Jeremia treurend over de verwoesting van Jeruzalem),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1606–1669), 상수리 나무 패널 위 유화, 1630, 58x46㎝,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국립 미술관.© 뉴스1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때로는 감탄사(感歎詞)가 인간의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한다. 한 유대시인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제국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무참히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 시인은 예루살렘이 자신이 신봉하는 신이 거주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난공불락이라고 믿었다.

인간이 그렇게 믿는다고, 예루살렘이 난공불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에 방어할 군사적인 힘이 없다면,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그는 자신의 신앙, 세계관, 조국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절규한다. 시인은 '에이카!'란 히브리어 감탄사로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슬픈 노래를 시작한다.

‘에이카’는 ‘어찌 이런 일이!’란 의미다. 이 단어는 ‘에이’와 ‘카’라는 단어로 구성돼있다. ‘에이’는 ‘어디에’라는 장소를 나타내는 의문부사이고 ‘카’는 2인칭 대명사 ‘너’란 의미다.

‘에이카’를 축자적으로 풀어 번역하면,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혹은 “당신을 위해 우리가 이런 멋진 성전을 건축했는데, 야만인들이 공격해 파괴되는 것을 어떻게 방치하실 수 있습니까?”로 번역할 수 있다.

혹은 신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이 담긴 “당신은 정말 존재합니까?”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 슬픈 노래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애가서'이고 다음은 그 첫 번째 구절이다.

“에이카! 이렇게 애통할 수가!
한때 사람으로 북적이던 도시가 이제 외롭게 되었구나!
그녀(도시)는 마치 미망인과 같구나!
모든 나라들 가운데 으뜸이던 그녀가,
모든 지방가운데 공주와 같은 그녀가 이제는 가여운 노예가 되었구나!”

며칠 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중국 우환에서 시작된 슬픈 소식 때문이다. 이 소식은 지난번 사스나 메르스 사태보다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동료인간으로 내가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매시간 들려오는 슬픈 소식이 절망적이고 안타깝다.

만일 내가 우환에 태어나 그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다면, 만일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면, 나는 어찌하나!

내가 입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에이카’뿐이다. 이 단어가 공허한 것은 아무리 신을 불러도, 신이 등장하여, 병에 걸린 사람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2019-nCoV라는 병명엔 이 질병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신종(新種)’이란 단어가 붙었다.

내가 정복해야 할 상대방을 알면, 승산이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싸움을 치러야 할 대상을 알지 못하면, 백전백패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이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이 질병이름에 담긴 들어간 n은 영어단어 novel의 약자다. n이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라는 병명 앞에 붙었다.

novel이란 단어는 라틴어 ‘노바’(nova)에서 유래했다. 그 의미는 ‘예상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한; 충격적인; 새로운’이란 뜻이다.

인류는 달에 우주선을 무사히 안착시키고, 화성으로 우주여행을 준비하고,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를 판독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우리의 동료들을 매일 수십 명씩 죽음으로 몰아가는 바이러스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첨단과학자들이 언젠가 이 바이러스에 저항하고 면역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겠지만,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과 그 친지들에겐 이 과정이 ‘에이카’다.

2019년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듯했지만, 인류는 아직 2020년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나 보다. 2019년엔 우리가 대처할 수 없는 재앙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산불, 유럽의 전례가 없는 대홍수, 그리고 12월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까지, 인간이 얼마나 자연 앞에서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경고들이다.

올해 겨울엔 눈이 없었다. 북한강이 처음으로 얼어붙지 않았다. 이런 이상기후와 재앙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깊이 반성하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의무인 도리(道里)를 망각하고 자신이 마치 지구의 주인인양 날뛸 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최근에 거주하기 시작한 신참이다. 지구가 50억 전에 형성됐고 현생인류(Homo sapiens sapiens)가 기껏해야 4만년 전에 등장했다.

그 기간을 일 년으로 계산하여 다시 측정하면, 인간은 1년 중 12월31일 오후 11시59분쯤에 우연히 운 좋게 지구에 나타나 진화했다.

그리고 자신이 거주하게 된 생명이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이라는 ‘지구’를 보호하고 아끼기는커녕, 지구의 원래 주인이었던 동물들을 살육하고 마음대로 잡아먹고, 나무와 풀들을 훼손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왔다.

생명이 있는 동식물에는 기한이 있다. 다른 생명체에 비해, 최근에 등장한 인류가 영원히 지구에 거주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며 오만이다.

한때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도 뼈만 남긴 채 멸종했다, 기원전 3만년 전 현생인류와 생존을 위해 마지막 전쟁을 벌이던 네안데르탈인도 사라졌다.

우리가 북경원인이나 자바원인으로 알고 있는 ‘호모 에렉투스’도 박물관 박재로 남아있다. 지구상 동물들은 영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을 단축하는 오만한 행위를 일삼는 인류는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지 모른다.

인류가 이런 재앙을 겪는 이유를 기록한 오래된 기록이 있다. 기원전 13세기쯤 메소포타미아의 한 시인이 흉작, 병, 전염병, 역병, 그리고 홍수와 같은 재해를 기록한 쐐기문자 문헌 '아트라 하시스'(Atra Hasis)다.

‘아트라 하시스’는 아카드어로 ‘너무 똑똑한 사람’이란 의미로 대홍수로부터 살아남은 영웅 ‘우트나피슈팀’(Utnapishtim)의 별칭이다.

'아트라 하시스'에 의하면 태초엔 인간들이 없었다. 지구에는 7명의 위대한 신들이 있었고 그들을 위해 노동하는 수많은 작은 신들만 살고 있었다.

노동하는 신들이, 위대한 신들에게 자신들이 힘든 노역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위대한 신들은 조그만 신들을 대신하여 노동할 노예를 진흙으로 만든다.

이 노예가 인간이다. 신들은 이제 자신들이 편히 쉴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착각이었다. 인간들이 지상에서 미쳐 날뛰는 통해 신들이 쉴 수 없었다.

고고학자들은 '아트라 하시스' 쐐기문자 토판문서를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에서 발견했다.

문화군주인 아시리아 제국의 아슈르바니팔 왕이 이곳에 도서관을 건축해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보관했다.

이 문헌에서 신들이 인간들에 재앙을 내리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괄호에 들어간 영어는 아카드어 단어에 대한 영어 음역이다.

2. 신들은 인간들이 내는 소음(騷音, rigmun)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3. 인간들의 파괴(破壞, ḫubūrum) 때문에 신들이 잠을 잘 수 없었다.

4. 국무총리 신인 엔릴이 ‘신들의 모임’을 소집하였다.

5. 그는 아들과 같은 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6. “인간들이 내는 소음”(rigim amēlūti)을 나는 참을 수 없다.

7. 나는 그들의 소음(rigmum)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졌고
8. 그들의 파괴(ḫubūrum)하는 소리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9. 그들에게 역병(šuruppū lībšī)이 내리도록 명령하여라!(qībā-ma šuruppū lībšī)
10. 죽음의 신(namtaru)이 그들의 소음을 줄일 것이다. (lišakliși rigimšīna namtaru)
11. 질병, 편두통, 역병, 그리고 전염병이 (murșu di’u šuruppū asakku)
12. 푹풍우처럼 그들을 덮칠 것이다.” (kīma meḫê liziqāšinātī-ma)

-'아트라하시스' 아시리아판본 뒷면 4단 2-12행

신들은 인간들의 두 가지를 싫어했다. 소음(騷音)과 파괴(破壞)다. ‘소음’이란, 개인이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으려는 아우성이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 타인이 자신보다 정신적인 혹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 그것을 시기하고 악의적으로 끌어내리려는 마음의 동요다.

인류가 도시문명을 건설하면서 제한된 공간에서 거주하기 시작하고,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재앙이 시작됐다.

제한된 물질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을 시작했다. ‘파괴’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함부로 대하는 오만이다.

인류는 무기로 무장해 지구의 원래 주인인 다른 동물을 마구 잡아먹고 인간에게 음료와 음식을 제공하는 자연을 마음대로 훼손하는 무식이다.

신들은 인간의 오만을 참을 수 없었다. 급기야는 ‘역병’을 내린다. ‘역병’을 의미하는 아카드어 '슈루푸 립시'(šuruppū lībšī)를 직역하면 ‘심장이 서리처럼 차가워지는 현상’ 즉 '감기'(感氣)다.

‘감기’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cold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병명이다. 죽음의 신인 ‘남타루’(Namtaru)가 직접 나서 시끄러운 도시와 인간의 문명을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만들었다.

온갖 질병, 편두통, 역병 그리고 악마가 가져다주는 전염병이 폭풍우처럼 인간을 덮쳤다. 과거 예루살렘이 그랬던 것처럼, 우환도, 우리의 도시들로 그런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에이카!” 이 히브리 단어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무한한 후회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엄청난 비극과, 그 비극을 수습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모두 담았다.

우리가 이런 비극 앞에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아… 이럴 수가!’라는 탄식밖에 없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여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동물들을 야만적으로 학대한다면 더 많은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이다.

그런 인간의 오만과 무지에 ‘에이카’다. 우한 시민들과 중국인들, 한국으로 들어온 우한교민들, 감염된 세계인들의 쾌유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