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보험

경찰서·병원 뛰어다니며 가짜 잡아내는 보험 탐정들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이용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5 18:26

수정 2020.02.05 18:26

보험사 보험사기전담팀
"평발로 283회 통원치료… 당신, 딱 걸렸어"
보험사기로 年 6조2천억 보험금 누수
선량한 가입자들 보험료 올려
1명당 7만원씩 손해보는 셈
범죄 적발 위해 최전선에서 뛰어
지능화되는 수법에 빅데이터 등 활용
무혐의·증거불충분으로 끝날때 아쉬워
한화생명 보험사기전담조사(SIU) 팀원들이 지난 1월 2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화생명 본사에서 보험사기 사례를 두고 분석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이용안 기자
한화생명 보험사기전담조사(SIU) 팀원들이 지난 1월 2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화생명 본사에서 보험사기 사례를 두고 분석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이용안 기자
6조2000억원. 한 해 보험사기로 민간보험에서 누수되는 보험금 규모다. 이렇게 누수된 보험금은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으로 메워진다. 피해는 보험사뿐만 아니라 선량한 보험가입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6조원이 넘는 누수 보험금으로 보험가입자 1명당 연간 7만원 이상을 손해보고 있다.
하지만 보험업계가 이런 보험사기를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다. 각 보험사는 보험사기단을 적발하고 그들로부터 보험금을 환수하는 '보험계의 경찰' 조직을 두고 있다. 바로 보험사기전담(SIU)팀이다. SIU팀은 보험사에서 보험사기 단속·적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고객의 과거 사고이력, 유형, 성별, 나이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보험사의 '보험사기방지시스템(FDS)'과 한국신용정보원의 '보험신용정보통합조회시스템(ICIS)' 그리고 금감원의 '보험사기인지시스템(IFAS)'을 활용해 보험사기를 적발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은 4134억원으로 전년 대비 134억원 증가하는 등 금융당국과 보험사들의 노력에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보험사기는 조직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 SIU도 업무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경찰·간호사 출신 인력을 적극 운용하고 있다. 한화생명 SIU팀은 기획·지원과 사기조사, 유의병원 관리 유닛으로 구성된다.

■보험사기 분석부터 현장방문까지

SIU팀의 하루는 회의로 시작한다. 오전 8시30분까지 회사에 도착, 9시부터 SIU팀이 한데 모여 분석회의를 한다. 분석회의에선 전날 저녁회의 때 정한 보험사기 사례를 분석한다. 해당 사기 사례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사기 혐의자와 이와 관련한 병원은 어느 지역에 있는지 분석한다. 이후 협업할 수사기관을 정해 연락한다. 오전을 분석회의로 보내고, 오후에는 연락한 수사기관을 직접 찾아간다.

기자가 동행취재를 했던 지난달 29일에는 경기 부천의 한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선 보통 수사과에서 근무하는 경찰과 보험사기 사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수사에 착수할지 등을 논의한다. 만약 경찰이 현장사진 등 추가로 요구하는 자료가 있다면 현장에 다시 들러 자료를 수집하기도 한다. 오후 5시쯤 회사로 복귀해 저녁회의를 한다. 당일 활동한 결과를 SIU 팀원들과 교류하고 다음 날 어떤 보험사기 사건을 분석할지 정한다.

SIU팀의 임무는 보험사기를 찾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SIU팀 내 기획·지원 유닛은 앞으로 발생할 보험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보험사기가 발생했다고 의심되는 영업현장을 방문, 관련 교육을 하고 각종 홍보물을 만들기도 한다. 한화생명의 경우 올해 생명·장기보험사기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병원의 사전관리를 새 업무에 추가했다. 관련 인력도 올해 안으로 21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보험사기는 크게 자동차보험사기과 생명·장기보험사기로 나뉜다.

생명·장기보험사기의 경우 병원과 보험업 모집종사자, 정비업소 종사자 등이 연계해 조직적으로 이뤄져 병원을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한화생명에 따르면 보험사기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병원은 전체 병원의 1.4% 규모인데도 해당 병원에서 지급한 보험금은 전체의 23%에 이른다. 또 2017년 상반기 1826억원 규모였던 생명·장기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지난해 상반기 2136억원으로 늘었다. 한화생명이 보험사기 의심병원 관리를 위한 인원 충원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창식 한화생명 SIU팀장은 "보험사기가 점점 조직적으로 변해 피해 규모가 커지고 적발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보험금이 누수될수록 그 피해는 가입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SIU의 존재 이유는 보험사기를 적발하고, 사전 예방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시민의 사회적 피해를 막겠다는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화생명 SIU팀 조사관들이 경기 부천의 한 경찰서에서 수사과 경찰과 보험사기 사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이용안 기자
한화생명 SIU팀 조사관들이 경기 부천의 한 경찰서에서 수사과 경찰과 보험사기 사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이용안 기자
■빅데이터 활용…"완전범죄는 없다"

"김 간호사, 나 왔어."

지난 2015년 대전의 한 병원에서 A씨는 이같이 말하며 다시 병원을 나섰다. 그는 통원치료를 받지 않았지만 병원은 A씨가 치료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지역에서 증거를 수집하던 한화생명 SIU팀에 해당 장면이 포착됐다. 당시 SIU팀은 해당 지역에서 6개월간 보험사기 환자로 의심되는 14명을 밀착조사하던 중이었다.

조사 결과 당시 보험사기는 병원, 보험설계사와 그들의 지인 등이 조직적으로 꾸며 이뤄졌다. 통원치료를 받으면 건당 5만원의 보험금을 탈 수 있어 부정수급을 위해 모의한 것이다. 일부 의사는 환자의 부탁을 받고 허위진단서를 발행, 보험금 편취를 도왔다. 보험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B씨의 경우 2013년에만 총 1267회의 통원 중 무지외반증으로 298회, 편평족으로 283회, 무릎관절증으로 296회 등의 통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기록됐다.

2013년 당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무지외반증 환자가 연평균 통원치료를 받는 횟수는 2.8회였다. 편평족과 무릎관절증인 경우는 각각 2.4회, 6.8회였다. SIU팀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특정 지역에서 과다·중복 통원이 상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험사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고 검찰은 혐의자들을 3그룹으로 나눠 기소했다.

지난해 말 1심 판결에서 일부 혐의자는 유죄가 인정돼 징역 6~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고영관 한화생명 보험심사팀 SIU파트장은 "보험사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은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며 "그런데 이미 보험사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병원, 환자 등의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보험사기가 적발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설명했다.

■수사권한 없고 컨트롤타워도 문제

SIU팀이 보험사기 적발의 최전선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SIU팀은 수사기관에 의뢰하기 전 자체적으로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환자의 진료기록을 병원에서 확인하려면 해당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수사기관은 영장을 통해 병원으로부터 진료기록을 받을 수 있지만 SIU팀은 수사권한이 없다.

서인천 한화생명 SIU파트 시니어매니저는 "SIU팀 차원에선 보험사기가 발생하는 구체적 정황을 포착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힘들게 정황을 포착해 수사기관과 1년 이상 협업을 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보험사기 사건이 무혐의나 증거불충분으로 끝난 경우도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경찰 내 보험사기 전담인력이 부족한 점도 SIU팀의 고충 중 하나였다. 보통 경찰서 내 지능범죄수사팀이 보험사기 사건을 맡는데 보험사기 사건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아 업무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고 파트장은 "전남지방경찰청 같은 경우 보험사기를 전담하는 보험전담팀이 있다"면서 "조직적으로 변해 가는 보험사기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경찰 내 보험전담팀이 전국적으로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정부의 보험사기 컨트롤타워도 문제다. 2009년 검찰·국토교통부·금융감독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건강보험공단·생명·손해보험협회·근로복지공단 등이 참여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내 '정부합동보험사기전담대책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해당 기구에 기존 파견인력도 없어 실질적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고 파트장은 "현재 해당 기구는 명판을 대검찰청으로 옮겼다"면서 "담당검사 1명 말고는 다른 협업기관에서 나가 있는 직원이 없는 것으로 안다.
해당 기구가 제대로 작동해야 보험사기를 적발하고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일렀다.

king@fnnews.com 이용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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