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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KCGI,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6 17:04

수정 2020.02.06 18:43

[윤중로] KCGI,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행동주의 펀드.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이름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목표는 주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업가치 저평가 요인을 해소함으로써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최대한 아름답게 포장을 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당히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다. 실제 행동주의 펀드가 활성화된 해외에서는 막대한 자본력을 이용, 기업 경영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면서 '벌처펀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진그룹과 1년 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KCGI가 이 같은 '동전의 양면'을 잘 보여준다.

KCGI는 2018년 11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와 재무구조 개선을 외치며 한진칼의 2대 주주로 등장했다. 오너 일가의 비정상적 경영활동을 감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땅콩 회항'을 비롯해 한진 오너가의 연이은 갑질 사건에 분노한 주주들은 환영했다. 지난해 1월 KCGI가 공개적으로 제안한 '한진그룹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의 핵심 중 하나는 기업가치 제고다. 만성 적자에 빠진 칼호텔네트워크 등 항공업과 시너지가 낮은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회사 평판을 실추시킨 사람은 임원 취임을 금지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KCGI는 지난해 3월 말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모든 안건이 표결에 부쳐지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지만 한진칼이 제안한 모든 안건이 여유 있게 통과됐다.

꼭 1년이 흘렀지만 KCGI의 주장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손잡은 점이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이들은 "한진그룹의 경영이 심각한 위기다. 전문경영인 도입 등 경영혁신, 재무구조의 개선 및 경영 효율화를 통해 주주가치 제고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놀라운 점은 KCGI가 혁신의 대상으로 지목했던 조 전 부사장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적과의 동침'을 넘어 그동안 KCGI가 주장해온 것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안이라 고개를 절로 갸우뚱하게 된다. 조 전 부사장은 칼호텔네트워크와 왕산레저개발 등 이력서 대부분을 호텔과 레저 사업으로 채웠다. '땅콩 회항' 사태 이후 경영에 다시 복귀할 때도 칼호텔네트워크를 선택할 만큼 애착을 갖고 있다.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행동주의 펀드라는 '가면'을 쓴 사모펀드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시각이 많다. 그들에게는 '수익률'이나 '돈'이라는 결과가 중요할 뿐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명분이나 과정 따위는 중요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코드 본격화, 소액주주들의 단기수익 추구와 맞물려 행동주의 펀드 '바람'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모든 행동주의 펀드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실제로 '건전한'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 경영을 투명하게 만든다. 하지만 최근 KCGI의 행보를 보면 아무 사모펀드에나 행동주의 펀드라는 이름을 붙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조원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 3월 주주총회에서 양측의 한판승부가 펼쳐지게 된다.
정말로 궁금하다. KCGI는 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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