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혐오와 배제에 짓밟힌 두 여성의 꿈

김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0 16:35

수정 2020.02.10 16:35

[기자수첩] 혐오와 배제에 짓밟힌 두 여성의 꿈
"아, 정말 안타깝네요."

지난 7일 오후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입학을 포기하겠다는 보도가 나오자 기자실에선 한숨과 탄식이 터져나왔다. 지난달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변희수 하사가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길 희망한다"고 호소했으나 강제전역을 당한 것을 지켜본 터라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법학도가 되고자 했던 22세. A씨의 작은 바람도 그녀를 향해 거세게 몰아친 반대 목소리에 무너져 내렸다.

지난해 성전환수술을 받은 A씨는 법원에서 성별 정정신청까지 허가 받아 주민등록상 여성이다. 다른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모든 전형을 거쳐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A씨가 여대에 입학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소재 여대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 동아리를 포함한 학생 1만명이 A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숙명여대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 항의전화를 했고, 총동문회는 항의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A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주장은 대체로 '여성의 공간을 침해하려 한다'거나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 성별에서 여성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A씨가 대학에 입학할 수 없는 제도적 근거나 타당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변 하사도 마찬가지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남성으로 입대한 자의 성전환 후 계속 복무에 대한 규정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 동부 명문여대 스미스칼리지는 지난 2015년 5월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여자대학이라는 특유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남성으로 태어났더라도 이후 여성으로 전환했을 경우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또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 교직원 등 모든 영역에서 성소수자들을 포용하고 있다. 변 하사의 강제전역과 A씨의 입학 포기는 큰 맥락에서 비주류에 대한 혐오와 배제의 정서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도 이 같은 혐오 탓에 드러내지 못하고 묵묵히 생활하는 성소수자들이 분명 있다. 국제사회에서 이들의 정체성을 여러 논의를 통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우리 사회도 이들을 포용할 줄 아는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또 다른 '제2의 변희수 하사'가 우리 앞에서 눈물을 삼키며 받아들여지길 호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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