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헤아려보지 않고 뭉뚱그리는, 그게 차별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7 16:34

수정 2020.02.17 16:34

[기자수첩] 헤아려보지 않고 뭉뚱그리는, 그게 차별
페루 리마에서 골목길을 걸을 때였다. 키 큰 남자 두 명이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내게 스페인어로 중국인이라는 뜻인 "치노(Chino)"라고 말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에겐 일상적 놀림이자 차별이었다. 나는 단지 중국인과 똑같은 피부색을 가진 인간일 뿐이었다.

한국에선 치노라는 말 대신 짱깨라는 표현을 쓴다.
최근에는 '착짱죽짱'이란 더 심한 혐오표현도 보인다. 중국이 코로나19 발병지역으로 꼽히면서 모든 중국인을 비하하는 뜻이다. 하지만 거꾸로 프랑스 가게점원이 한국 교민에게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돈을 손으로 받지 않고 테이블에 올려두라고 한다면 어떨까.

차별의 또 다른 이름은 뭉뚱그림이다. 세세하게 보지 않고 대강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일부 유럽에선 아시아인을 싸잡아 보균자로 본다. 한국에선 모든 중국인을 바이러스 감염자로 몰아가는 사람이 있다. 차별과 분노의 감정은 즉각적이고 쉬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감염병 원인과 대응책을 꼼꼼하게 점검하며 이해하기보다는 단죄의 대상을 찾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대부분 갈등은 세세하게 볼 때 이해할 여지가 있다. 물론 감염병이 시작된 나라와 국민에게 공포심을 갖는 건 본능적인 감정일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존중도 생각해봐야 한다. 유엔총회 세계인권선언문은 2조에서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김기택 시인의 '회색양말'이라는 시가 있다. '회색 양말을 신고 나갔다가 집에 와 벗을 때 보니. 색깔이 비슷한 짝짝이 양말이었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것인가. 비슷하면 무조건 똑같이 읽어버리는 눈. 작은 차이를 일일이 다 헤아려보는 것이 귀찮아' 중국발 감염병과 중국인을 뭉뚱그려 인종비하를 하는 건 덮어놓고 미워하는 처사다.

중국이 코로나19 발병 근원지인 것과 중국인을 비하하는 건 다른 문제다.
중국이 왜 발병 근원지가 됐는지는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할 복잡한 사안이다. 중국의 시스템을 따져볼 일이다.
다만 인종, 국가, 성별 등 개인이 결정지을 수 없는 것들을 복잡한 갈등사안에 뭉뚱그리지 말자. 손쉬운 차별로 이어질 뿐이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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