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여의도에서] 보험금 누수 키우는 '전문가들'

홍석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7 16:34

수정 2020.02.17 16:34

[여의도에서] 보험금 누수 키우는 '전문가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모럴 해저드). 법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집단이기주의를 나타내는 상태나 행위를 말한다.

보험시장에서 보험료에 비해 보상조건이 지나치게 좋은 경우 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보험 가입 전보다 더 자주 병원에 간다. 병원은 수입을 늘리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 환자에게 과잉진료를 권한다. 또 환자는 보험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과잉진료라면 상관없다. 자동차보험의 보상조건과 사고로 인한 입원비 지급이 후하면 보험 가입자는 사고를 일부러 낸다.


최근 보험업계에 도덕적 해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손의료보험 때문이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지난해 3·4분기까지 130.9%에 달했다. 손해율이 130%를 넘었다는 것은 고객으로부터 받는 보험료보다 보험금을 30% 더 지급했다는 의미다.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는 것이 비급여 진료다. 정확히 말하면 비급여 과잉진료다. 일부 병원에서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를 과잉진료하면서 보험금 청구액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단순 감기로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영양주사를 처방하고,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가면 도수치료를 당연한 듯 처방한다. 모두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대상이다. 이렇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요즘 보험사가 병원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 입장에선 손해볼 것이 없다. 더 나은 진료서비스를 받아도 비용 부담이 없다. 실손보험으로 보험사에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 사이에서 실손보험을 알차게 활용하는 팁이 온라인상에 떠돈다. 실손보험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까지 든다고 한다. 이는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다.

이 같은 도덕적 해이는 나아가 보험사기로 이어진다. 과거 고의사고, 피해과장 등 생계형 보험사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병·의원, GA(보험대리점), 손해사정사, 보험설계사, 정비업체 등 소위 전문가들이 연루된 보험사기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도덕적 해이를 활용한 조직적이고 전문화된 보험사기를 펼친다. 보험사들이 보험사기 조사 조직을 확대하고 있지만 2016년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제정됐는데도 보험사기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4134억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도덕적 해이에 따른 과잉진료, 보험사기 등의 피해는 고스란스 일반 보험 가입자에게 전가된다. 과잉진료에 따른 실손보험 과잉청구는 보험사 손해로 이어진다. 지난해 실손보험으로 인한 보험사의 손실액은 2조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손실액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보험사들은 올 초 9.9% 수준의 보험료(2017년 이전 출시된 옛 실손보험)를 인상했다. 비급여 등 과잉진료는 비단 보험료뿐만 아니라 국가 건강보험료 인상에도 지분을 차지한다. 더욱이 병·의원, 정비업체 등 전문가들이 연루된 보험사기는 일반 소비자를 잠재적 보험사기범으로 만든다. 병·의원이 문제없다고 받은 과잉진료 때문에 보험사로부터 잠재적 보험사기범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

실손보험뿐만이 아니다.
자동차보험 또한 정비업체, 손해사정사 등의 도덕적 해이에서 오는 보험금 누수가 여전히 많다. '전문가들만 소임껏 제대로 일하면 보험사기는 줄어들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병·의원, 손해사정사, 정비업체 등 전문가들의 자성이 필요하다.

hsk@fnnews.com 홍석근 금융부 차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