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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없는 EU-英, 무역협상 '노딜' 예고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7 18:18

수정 2020.02.17 18:18

EU "英에 혜택 줄 수 없다"
英 "호주 방식까지 각오"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이행기간 안에 무역협정 체결을 논의하고 있는 영국과 EU가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기 전부터 서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영국은 '캐나다식 모델'을 추구하고 있지만 합의가 여의치 않을 경우 '호주식 모델'까지 각오하겠다는 입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21일 EU 회원국 논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협상이 전개될 예정이지만 영국과 EU 간 협상이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장 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뮌헨에서 열린 안보 콘퍼런스에서 "무역문제와 향후 (EU와 영국간) 관계설정에 관한 논의가 곧 시작되겠지만 서로 더 멀어지기만 할 것"이라면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는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보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드리앙 장관의 발언은 17일 데이비드 프로스트 영국측 협상대표의 발언을 하루 앞두고 나왔다.
프로스트 대표는 EU가 EU 규정 준수를 강요할 경우 무역합의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며 대신 영국은 EU가 캐나다·일본·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 준하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를 원한다는 발언을 할 예정이다.

EU는 아직 협상원칙을 정하지는 않은 상태다. 21일 EU 본부에 파견된 회원국 대표들이 모여 논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일 안에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지난달 말 브렉시트를 전후해 드러나는 EU의 확고부동한 원칙 하나는 영국과 EU간 평평한 운동장 논리다. 영국이 EU 규정을 준수해 EU 회원국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지 않는다면 영국에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캐나다 등에 느슨한 규정준수를 적용했다는 영국 주장에 대해 EU는 상황이 다르다며 반박하고 있다. 영국은 캐나다 등과 달리 EU와 경제가 거의 통합된 상태여서 느슨한 규정이 적용된다면 EU 기업들이 심각한 경쟁력 저하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 EU의 우려다. 영국은 한국·일본·캐나다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티에리 브레통 EU 단일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영국이 EU 규정 제정에서 핵심역할을 했음을 강조하고 "영국도 이같은 규정을 통해 만들어진 EU 단일 시장의 혜택을 누리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국은 EU가 한국, 일본, 캐나다와 FTA에서는 영국에 지금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느슨한 규정 준수를 적용하고도 관세 상당분을 없애줬다는 점을 들이밀 계획이다. 또 노동자 권리, 환경, 보건·안전 등 분야에서 영국의 규정들이 이미 EU 기준을 크게 앞질렀으며 보조금 문제에서는 대부분 EU 회원국들보다 훨씬 더 양호한 기록을 갖고 있다는 점도 강조할 계획이다.

영국은 최후의 수단으로는 호주식 무역협상도 검토하고 있다. 호주 모델의 경우 기본적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기반한 느슨한 무역 관계를 갖되, 항공 등 중요한 분야에서는 별도 합의를 체결하는 방식이다. 존슨 총리는 캐나다식을 원하고 있지만 프로스트 대표는 필요할 경우 대안으로 EU가 호주와 맺은 무역협정과 같은 정도의 무역협정을 추구할 수도 있다고 밝힐 전망이다. 앞서 존슨 총리는 지난 3일 발표에서 "'딜'이냐 '노딜'이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EU가 캐나다와 체결한 것과 같은 무역관계에 합의하느냐, 아니면 호주와 같은 형태가 될 것인가의 문제이며 어느 쪽을 선택해도 영국은 번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노딜 브렉시트와 다를 바 없다고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전환기가 끝나는 올 연말 이후에는 양측이 무역협정을 맺더라도 호주식이 될 경우 협정 뒤에도 EU와 영국간 무역에 관세와 세관 검사가 개시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호주식 무역협정은 노딜 브렉시트의 완곡한 표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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