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국민 알 권리냐 피의자 인권이냐…고유정이 남긴 세 가지

뉴스1

입력 2020.02.19 07:01

수정 2020.02.19 09:58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고유정(36)이 지난해 6월7일 제주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고유정의 얼굴이 취재진에 포착된 순간은 이 때가 유일하다. 당시 고유정이 취재진이 설치한 카메라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9.6.7 /뉴스1 © News1 DB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고유정(36)이 지난해 6월7일 제주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고유정의 얼굴이 취재진에 포착된 순간은 이 때가 유일하다. 당시 고유정이 취재진이 설치한 카메라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9.6.7 /뉴스1 © News1 DB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고유정(36)이 지난해 8월12일 오전 제주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고 나와 호송차에 오르며 시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2019.8.12 /뉴스1 © News1 고동명 기자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고유정(36)이 지난해 8월12일 오전 제주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고 나와 호송차에 오르며 시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2019.8.12 /뉴스1 © News1 고동명 기자


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장이 지난해 6월11일 제주시 동부경찰서 4층 강당에서 열린 ‘전 남편 살해 사건’ 수사 결과 최종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던 중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2019.6.11 /뉴스1 © News1 DB
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장이 지난해 6월11일 제주시 동부경찰서 4층 강당에서 열린 ‘전 남편 살해 사건’ 수사 결과 최종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던 중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2019.6.11 /뉴스1 © News1 DB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고유정 전 남편·의붓아들 사건은 우리 사회에 예기하지 못한 여러 논란거리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 인권 중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느냐의 문제였다. 수사기관들이 입을 열지 않을 때마다, 고유정이 '커튼 머리'로 법정에 출석할 때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여론은 이를 방증한다.

이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경찰은 수사기관 피의사실 공표와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법적 문제와 개선 방안을 살피고 있다.

이와 함께 경찰 스스로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수용해 '실종수사 매뉴얼'을 개선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입 닫은 검·경…유명무실 '피의사실 공표' 향방은

경찰은 지난해 6월1일 고유정을 체포한 뒤 사건의 뼈대만 간략히 밝히며 조사 내용에 대해 일체 함구했고,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역시 사실상 함구령을 내리고 수사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현행 형법 126조는 검찰이나 경찰 등이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외부에 알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령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최근 11년간(2008~2018년) 피의사실 공표로 고소·고발된 사건 347건 가운데 기소된 사례는 단 1건도 없다. 입증이 어려운 데다 공익사안의 경우는 면죄부를 받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모순적이게도 그동안 검찰은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 경찰은 '경찰수사사건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훈령에 따라 예외적으로 수사내용을 공개해 왔다. 이미 위법성을 안고 있었던 문제였던 셈이다.

현재 검경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공소 제기 전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들을 상위법령에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법제처의 의견을 바탕으로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민 공분 산 '커튼 머리'…"신분증으로라도 공개"

고유정은 그간 수차례 마련됐었던 포토라인에서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다. 매번 머리카락이나 두 손, 운동복 등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식이었다.

일찍이 경찰은 지난해 6월5일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고유정의 얼굴, 실명,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뿐 아니라 증거가 충분하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피의자의 재범방지, 범죄예방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고유정의 얼굴의 경우 이동 시 취재진의 사진·영상 취재에 협조하는 간접적인 공개 방식을 택했다. 공보 규칙에 따르면 신상공개 대상의 얼굴을 공개할 때에는 얼굴을 가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고유정은 법원에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한 경찰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기 방어에 나서기도 했었다.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에도 고유정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자 여론의 공분은 커져만 갔다. 첫 공판일이었던 지난해 8월12일 법원 앞에서 한 시민에게 머리채를 잡힌 고유정의 모습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결국 경찰은 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진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신분증 사진을 통해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와 행정안전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유정 거짓말에 휘둘린 경찰…"실종수사 매뉴얼 개선"

경찰은 수사 초기 고유정의 거짓말에 속아 수색을 소홀히 한 채 이틀을 허비했다.

경찰 진상조사 결과 이번 사건이 실종·자살 의심 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 전환된 결정적인 계기는 경찰이 초기에 확보하지 못한 펜션 인근 주택 CCTV에 있다.

이 CCTV에서 피해자가 이동하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으면서 "전 남편이 펜션에 함께 있다가 먼저 떠났다"는 고유정의 진술이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심지어 이 CCTV는 경찰이 아니라 유족이 동분서주 끝에 찾아낸 것으로, 경찰은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고유정의 진술에 더 무게를 둔 상태였다.


이후 경찰은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수용해 '중요사건 초기 위기관리 종합대응팀 운영 지침'을 마련했다.

고유정 사건과 같은 중요사건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경찰청‧지방청‧경찰서 간 신속한 지휘체계를 구축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수사 효율성을 높인다는 게 주된 골자다.


경찰은 앞으로 실종사건의 경우 조금이라도 범죄 관련 의심점이 발견되면 형사들을 기존보다 더 신속하고 폭넓게 투입해 적극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