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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중국인 입국제한, 정말 필요없을까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7 17:20

수정 2020.02.27 17:20

[여의도에서]중국인 입국제한, 정말 필요없을까
수년 전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많이 쓰이는 신조어 중에 '이불킥'이라는 단어가 있다. 잘 때 덮는 '이불'과 발로 찬다는 뜻의 영단어 'Kick'의 합성어다. 쉽게 말해 이불 속에서 발길질을 한다는 뜻인데, 주로 좋지 않은 기억이나 겪었던 창피한 일이 떠올라 밤에 자다가 발을 동동 구르는 모양새를 의미한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자다가 발길질을 하겠느냐만, 살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남들이 뭐라 하지 않아도 괜스레 나 홀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발을 동동 구를 만큼 분통이 터졌던 경험이 하나둘씩은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온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이불킥이 저절로 나올 만큼 분통 터지는 일도 이어진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태를 보면서 허둥대는 일본 정부를 비웃었다. 재난 대처에 있어 선진국이라던 일본의 당황한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느긋해했다. 그런데 이제 그 비웃음을 우리가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다.

이미 40개 넘는 나라들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린 제법 잘하고 있다'며 자화자찬하던 우리 정부도 당황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은 내놓지 못한다.

가장 기가 막힌 일은 중국 각 지방정부가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이불킥이 절로 나올 일이다. 그런데 유독 중국인 입국금지에 대해 정부는 시종일관 '필요없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복지정책 수장은 중국인 입국금지는 필요없다면서 코로나19 확산은 한국인들 때문이라는 발언으로 사람들의 분노에 기름까지 끼얹는다.

이미 국내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상황에서 굳이 중국인들의 입국을 차단하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말은 아마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방역의 실효성 측면에서는 그렇다.

문제는 국민들의 불안감이다. 확진자가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정부 방역에 구멍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 상황이 과연 실효성을 따지고 있을 만큼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세월호 참사가 국민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을 지폈던 것은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았던' 정부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분초를 다투는 순간에 여론이나 절차 등을 따지면서 골든타임을 날려버려서다.

중국인 입국금지가 큰 도움이 안될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의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다면 실효성 같은 것 따지지 말고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염병 확산은 결국 너희들 탓이라며 정부가 국민에게 손가락질할 시간에,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것은 해보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국민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킬 수 있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모범답안을 중국에서 먼저 내놨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중국 측에 한국인 입국금지는 과도하다고 항의한 데 대해 한 유력 현지 매체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매체는 사설을 통해 "외교보다 방역이 중요하고, 이는 외교의 문제도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너무나 명쾌하게도 맞는 말이지만, 우리 국민 입장에서 이불을 수십번 걷어차게 만드는 지적이다. 아주 작은 구멍만 뚫려도 방역은 실패다.
창궐한 전염병 앞에서 정치, 외교 득실을 따지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부가 눈치를 채야 할 때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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