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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샌더스만 기다리는 트럼프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8 16:58

수정 2020.02.28 16:58

[월드리포트]샌더스만 기다리는 트럼프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얼어붙은 요즘 미국에선 민주당 대권 주자를 가리는 경선이 뜨겁다. 3월 3일(현지시간) 14개 주가 동시경선을 치르는 '슈퍼 화요일'을 앞둔 후보들의 유세는 쉴 틈이 없다. 단연 돋보이는 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샌더스 의원은 이제까지 3차 경선 중 2연승을 하며 원톱 대세로 순항 중이다. 대세론 주자로 꼽혔던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이 경선 초반 '부진의 늪'에 빠진 데다 '중도 대안주자'로 급부상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TV토론에서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백인 동네' 아이오와·뉴햄프셔와 달리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네바다에서 거둔 승리는 샌더스 의원의 무게감을 높였다.


혈투 속에서 살며시 미소짓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내 독주체제를 유지하며 이미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다. 맞붙게 될 적수가 누구일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대놓고 샌더스 의원을 응원한다. 네바다주에서 승리한 샌더스 의원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버니, 축하한다"며 다른 후보들이 승리를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강성 진보' 성향인 샌더스 의원은 트럼프 진영에서 '가장 손쉬운' 후보로 꼽혀왔다. 샌더스 의원은 소득불평등 해소, 보편적 건강보험, 최저임금 인상, 무상교육 등의 진보적 의제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지향해왔다. 이런 정치적 색채는 78세의 나이에도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를 가능케 하는 동력으로 꼽힌다. 그러나 확장성에선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 주류 진영에서 '샌더스 대세론'에 적잖은 우려가 감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후보로는 지명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본선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밀린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아직 경선에 제대로 뛰어들지도 않은 블룸버그 전 시장을 경계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일부 여론조사에서 1위까지 치고 올라오며 존재감을 키우자 맹공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블룸버그 전 시장을 '미니 마이크'로 깎아내리며 "존재감 없는 루저"라고 비난했다. 사업가 출신답게 수천억원을 광고비에 쏟아붓는 억만장자가 더 힘든 상대처럼 보인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민주당 TV토론 데뷔전에서 참패한 블룸버그 전 시장을 본 뒤에는 신이 났다. 그는 트위터에 "(블룸버그가) 토론회에서 두들겨 맞고 있다고 들었다"며 "그는 아마도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민주당은 29일 '슈퍼 화요일' 전 마지막 4차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경선을 앞두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의 특징은 개방형이라는 점이다. 당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유권자 등록만 마쳤다면 투표할 수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일부 지지단체가 공화당 지지층을 향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샌더스 의원을 지지하라고 주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다면 샌더스 의원이 정말 만만하기만 한 상대일까. CNN은 26일 "샌더스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까"라는 기사에서 "그렇다"(sure)고 단언했다. 튼튼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고 CNN은 지적했다. 샌더스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유권자들도 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17~25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면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샌더스 의원이 꼽혔다. 민주당 지지자와 무당층 가운데 26%가 샌더스 의원을 선택했다.
불과 한달 전 17%에서 대폭 상승한 수치다.

imne@fnnews.com 홍예지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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