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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이해충돌방지법, 대한민국을 위한 디딤돌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01 16:40

수정 2020.03.01 20:30

[차관칼럼] 이해충돌방지법, 대한민국을 위한 디딤돌
미국 듀크대학교의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 교수는 그의 저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는지 얘기한 바 있다. 그 책의 여러 일화 중 하나에서 현관문 잠금장치를 수리하러 온 열쇠공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세상 사람들 중 1%는 절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않지만, 또 다른 1%는 아무리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 놓아도 어떻게든 문을 열어 물건을 훔치려고 합니다. 나머지 98%는 조건이 제대로 갖춰진 상태에서만 정직한 사람으로 남습니다. 자물쇠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정직하게 남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공직자는 직무를 수행할 때 공익을 우선시해야 하며, 공적 직위를 이용해 부당한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직자라면 누구나 명심해야 할 기본원칙이지만, 청렴한 공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오로지 공직자들의 도덕성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평범한 공직자들은 위 이야기의 자물쇠처럼 튼튼한 반부패 시스템이 갖춰져 있을 때 비로소 공평무사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은 이해충돌에서 비롯되는 부패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해충돌'은 공적 의무와 사적 이익 사이의 딜레마 상황을 의미한다. 이해충돌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공직자의 직무수행이 불공정하게 이뤄지거나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하될 우려가 있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 운영해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청탁금지법 제정 당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해충돌 방지규정이 제외된 이후 20대 국회가 끝나가는 현재까지도 입법화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2013년 이후 의원발의안과 정부안을 합쳐 총 10건의 법안이 제출됐으나 어느 것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으며, 그사이 고위공직자들의 이해충돌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이전부터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월 국회에 제출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 정부안은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가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를 신고하고 해당 직무로부터 회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직무관련자와 금전이나 부동산 등 사적 거래를 할 경우에도 신고하도록 하고, 고위공직자나 채용업무 담당자의 가족이 소속기관에 채용되는 것을 제한하는 등 공직자가 준수해야 할 총 8개 행위기준을 담고 있다. 그동안 논의됐던 다양한 이해충돌 방지규정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만큼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된다면 공직사회의 청렴성과 공정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올해 6월 우리나라에서는 140여개국 2000여명의 반부패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반부패회의(IACC)가 개최된다.
우리나라의 반부패 노력과 경험 그리고 성과를 국제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인 만큼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청탁금지법이 청렴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출발점이었다면, 이해충돌방지법은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공직사회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국민의 기대수준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반부패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기대해본다.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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