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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10 17:16

수정 2020.03.10 17:16

[fn논단]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봐왔지만, 최근처럼 당혹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외환위기, 카드채 사태, 금융위기, 재정위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많은 위기가 한국 경제를 위협했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과거의 위기들에서는 최소한 사회적 방어시스템은 작동했기 때문이다. 충분하지 않지만, 정부가 어느 정도 안전판 역할을 했고 사회적으로도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19가 가져오는 사회적 파괴력은 우리에게 너무 벅차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인간이 무기력할 수 있고, 이렇게 우리 사회시스템이 취약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넘어 패배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오래도록 치유되지 못할 것 같다. 2020년은 국민들 기억에서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2020년 당시의 시대감정이 어땠는지를 회상해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각인된 감정은 국민의 생명이 위협을 받았었다는 느낌일 것이다. 비록 치사율은 낮았지만, 가격이 몇 배가 폭등해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마스크 한 장 살 수 없었던 슬픈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조차도 방호복이 모자랐다는 기억일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기억할 것이다. 둘째, 혐오와 불신이 사회를 지배했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어떤 책임 있는 정책 당국자는 이 사태가 국민 탓이라고 하고, 보수 언론과 야당은 정부를 비난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모든 국민이 힘을 모아도 이 벅찬 국난을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비방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겨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선진국이 될 준비가 돼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자존심이 철저히 뭉개진 한 해였다고 기억될 것이다. 많은 감염자가 나와 많은 국가에서 한국인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가 확산되고 있다. 해외에서 신혼부부들이 억류되고, 한국발 항공기가 착륙을 불허 당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 여행주의 조치도 내려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마치 한국과 한국인을 병원균처럼 간주한다. 한국이 글로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어찌 그들을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자기들도 살아야 하니까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자존심이 철저하게 짓밟혔던 이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이미 사태는 벌어졌고, 되돌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후 어떤 국난이 와도 막아낼 수 있는 견고하고 튼튼한 국가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국민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마스크와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방호복은 남아돌 정도로 충분했으면 한다. 국민소득 3만달러에 부끄럽지 않은 건강한 시스템을 갖췄으면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래도 우리는 잘 싸우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이 국난을 극복할 것이다. 인간이 바이러스와 다른 점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 와도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도 사선(死線)에서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의료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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