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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사우디-러시아 무모한 석유전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13 16:47

수정 2020.03.13 16:47

[월드리포트]사우디-러시아 무모한 석유전쟁

지난 6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제안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유가전쟁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글로벌 증시 폭락까지 겹치면서 전망이 어두워지는 세계 경제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주말 끝난 세계 주요 산유국인 이른바 'OPEC+' 회의에서 OPEC 비회원국인 러시아는 유가의 추가 하락을 막아야 한다며 카르텔에서 제안한 감산을 거부했다. 이에 OPEC을 대표하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증산과 함께 아시아 국가에 가격을 낮춰서 원유를 판매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유가가 급격히 추락했다. 올해 초 배럴당 69달러로 출발한 북해산 브렌트유는 OPEC+ 회의 끝나기 전날 46달러대에서 12일에는 33달러대로 추락한 상태다.

유가가 크게 떨어졌던 지난 2014~2015년 당시에는 세계 경제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기대에 저유가가 반가운 소식이었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 급락했을 때와 달리 코로나19로 인해 소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올해 세계 원유 수요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다음 해인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IHS마킷은 이번 분기에만 하루 수요가 역대 최대 감소량인 380만배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돌발행동은 유가의 추가 하락을 각오하는 모험으로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으로 위상을 재확립하고,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도록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우디는 다음 달부터 비축원유까지 풀고 증산분까지 합쳐 현재보다 250만배럴 많은 하루 1230만배럴을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지난 11일에는 국영석유업체인 아람코에 하루 생산능력을 100만배럴 더 늘릴 것도 요구해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겨냥한 것으로 분석됐다.

페트로매트릭스의 올리비에르 야콥을 비롯한 석유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충격과 공포'에 비유되는 이번 전략을 선보임으로써 어느 산유국보다 더 빨리 공급능력이 있음을 과시하려 하고 있으며 지난주 OPEC+ 회의 결렬로 시작된 유가전쟁이 이제는 산유량 전쟁으로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OPEC 감산안 거부도 계산된 행동으로 풀이된다. 감산을 받아들일 경우 그 공백을 미국산 셰일석유가 메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셰일석유 증산에 힘입은 미국은 지난 2018년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OPEC 비회원국을 대표하는 러시아의 동의가 필요한 OPEC+의 감산은 떨어진 유가를 반등시켜줬지만 그사이 미국의 셰일산업 또한 성장시켜줬다. 러시아는 이것을 알고 있기에 그동안 OPEC+에서 감산 제안이 나올 때마다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 러시아 석유업계는 감산 반대파들이 이끌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14~2015년 유가 급락 후 원유시장의 복병이 된 미국 셰일석유 산업이 부채가 많은 것 등 재정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이 기회에 말살시키겠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석유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코로나19까지 겹친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알렉산데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이 OPEC과 협상 의사를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양측의 화해가 쉽게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 이들의 기싸움에 카르텔의 취약한 산유국과 에너지 개발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OPEC 산유량 3위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다음 달부터 현재보다 하루 100만배럴 더 많은 400만배럴을 생산하겠다며 증산 경쟁에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지난주 시작된 산유량 전쟁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만 바라고 있다.

jyoon@fnnews.com 윤재준 국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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