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또 반복된 비례대표 꼼수의 역사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16 17:09

수정 2020.03.16 17:09

[기자수첩] 또 반복된 비례대표 꼼수의 역사
1963년 군사정부 시절 처음 도입된 비례대표는 당시만 해도 집권세력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악용됐다. 박정희 정권이 선거법 개정을 통해 전체의석 4분의 1을 비례대표로 뽑았는데, 헌법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비례대표 선출을 담당했다. 사실상 대통령이 비례대표를 임명한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1980년대 부활했지만 폐해는 여전했다.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지역구에서 1당을 차지한 정당이 전체 비례대표 총의석의 3분의 2를 가져가도록 한 것이다.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기 위한 '꼼수'로 선거의 공정성을 철저히 훼손했다.


지금처럼 지역구 투표와 별개로 지지정당에 한 표를 행사하는 비례대표 투표방식은 2004년 17대 총선에 들어서야 시작됐다. 다만 이 역시 당 총재와 지도부가 막강한 공천권을 휘두르는 시대에서 밀실공천, 정치헌금 상납 등 여러 문제가 부각돼 왔다.

21대 총선에서는 '준연동형'이라는 개편된 비례대표제로 선거가 치러진다.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전국 정당 득표율에 미치지 못하면 비례대표 의석을 통해 총 의석을 보장하는 제도다. 비례대표만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의석을 배분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국민 대표성과 비례성 등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제도가 바뀌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 방법에만 몰두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우회도로를 선택하자 당초 이를 맹비난하던 더불어민주당은 1당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녹색당, 미래당 등 외부 정당들과 연합하는 꼼수로 똑같이 맞대응하기로 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위성정당 난립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공천 과정의 투명성과 비례대표 의원들의 전문성 부족도 여전한 문제로 지적됐다.

거대 양당이 제도 자체를 훼손시키면서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겠다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의 취지는 퇴색이 불가피해졌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수십년 전 꼼수가 또다시 판치는 정치권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mkchang@fnnews.com 장민권 정치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