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금융상품 가격의 '기준' 만드는 이들 "증시 마감 후 시간·숫자와의 싸움 시작되죠"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김현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18 18:28

수정 2020.03.18 18:28

투자상품 가치 매기는 자산평가 전문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가평가 전문기관 생겨나
"책임감으로 어깨 무겁지만
단기간에 많은 지식 쌓여
고객 궁금증 해결때 뿌듯"
투자자들이 투자한 상품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는 자산평가사는 금융산업의 인프라산업으로 통한다. 자산평가사가 평가가격을 산출하지 않으면 펀드의 기준가를 결정할 수 없고, 금융상품의 가치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산정하기 어려워 투자자 리스크 관리도 힘들어진다. 에프앤자산평가의 홍정식 평가서비스본부 본부장(오른쪽)과 김동욱 파생평가실 실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투자자들이 투자한 상품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는 자산평가사는 금융산업의 인프라산업으로 통한다. 자산평가사가 평가가격을 산출하지 않으면 펀드의 기준가를 결정할 수 없고, 금융상품의 가치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산정하기 어려워 투자자 리스크 관리도 힘들어진다. 에프앤자산평가의 홍정식 평가서비스본부 본부장(오른쪽)과 김동욱 파생평가실 실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모든 산업에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금융산업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이 투자한 상품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는 자산평가사는 금융산업의 후선업무이자 인프라산업으로 통한다.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자산평가사가 생긴 것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다. 기업의 회계처리를 장부가 평가에서 공정가치 시가평가로 바꾸라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사항이었다. 국내에도 시가평가를 할 전문기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자산평가사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자산평가와 나이스P&I, 키스채권평가, 에프앤자산평가 등 총 4곳이 설립됐다. 이 가운데 제일 후발주자로 뛰어든 에프앤자산평가는 탄탄한 업력을 바탕으로 이미 4대 평가사로 자리매김했다.

공정한 시가평가는 리스크 관리의 필수요건

"자산평가사의 평가가격 산출업무 없이는 투자자들이 매일 사고파는 펀드의 기준가를 결정할 수 없다. 또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상품의 가치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산정하기 어려워 투자자 리스크 관리도 힘들어진다."

에프앤자산평가의 평가서비스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홍정식 본부장은 자산평가의 영역은 금융산업의 핵심적인 업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홍 본부장은 증권사, 은행 등을 거쳐 에프앤자산평가에 스카우트됐다. 금융상품 관련 경력은 올해로 19년차를 맞았다.

에프앤자산평가의 평가서비스본부는 원화채권평가실(13명), 외화채권평가실(9명), 파생평가실(17명) 등 총 40명의 인력으로 구성됐다. 원화채권평가실은 국고채, 통안채, 회사채, 유동화증권,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외화채권평가실은 해외에서 발행되는 채권 및 신용연계채권(CLN), 신용구조화상품 등을 평가한다. 파생평가실은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선도환, 스와프, 구조화채권 등 원화채권평가실과 외화채권평가실에서 평가하지 않는 모든 상품을 평가하고 있다.

구체적인 자산평가업무에 대해 묻자 홍 본부장은 "자산평가사는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주식, 파생상품 등의 공정가치를 평가한다. 이러한 자산가치들은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 보험사, 은행 등의 금융기관에 전달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가령 평가한 자산가치는 자산운용사에서 운용하는 펀드의 기준가를 산출하는 데 사용된다"면서 "그리고 이 펀드의 기준가는 투자자의 펀드 신규매수, 환매가격으로 사용된다"고 덧붙였다.

증권사에서 발행한 ELS 등 파생상품의 환매 기준가로도 사용되며, 기업의 재무제표에 공정가치로 회계처리해야 하는 금융상품에 대한 가치로도 사용된다고 전했다. 즉 자산평가업무 없이는 금융산업이 굴러갈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로 8년째 평가업무를 맡고 있는 김동욱 파생평가실장은 정확한 가치평가가 요구되는 만큼 책임감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자산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거래 상대방 중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사례가 생긴다"면서도 "한정된 시간에 정확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평가에는 엄중한 책임이 따르는 점을 언급하면서 공정가치의 정확한 평가를 재차 강조했다. 자산가치 산정이 부실해지면 리스크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김 실장은 "잘못된 가치평가로 금융기관에 손해를 끼친다면 자산평가사가 배상 및 책임을 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평가결과에 대한 검증작업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시간싸움+정확한 평가 압박감 높아

자산평가업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보통 자산평가사는 오전에 해외시장 상품에 대한 평가업무나 데이터 수집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주요 업무는 거래소 장 마감 이후와 일반적인 금융기관들의 투자업무가 종료된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홍정식 본부장은 "정규 근무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하루 8시간"이라면서 "매일 거래소 장이 마감되고, 평가가격을 송출하기까지 약 3시간에 평가업무가 집중된다"고 말했다.

홍 본부장은 "평가업무는 정확해야 하는데, 아무리 시스템화를 해도 새로운 유형의 금융상품이 생기고 이슈가 발생하므로 수기 업무는 불가피하다"면서 "평가자에게는 꼼꼼함과 새로운 상황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 등이 요구된다. 평가자는 시간 내에 정확하게 업무처리를 해야 되는 부담감 및 책임감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겪게 되는 부분이 힘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근무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가 주52시간에 맞춰 금융인프라 회사 등의 업계 의견을 수렴, 컷오프제도 시행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홍 본부장은 "현행은 기준가 산출업무가 당일 밤 늦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면서 "업계가 주52시간 제도의 취지에 맞도록 제도적으로 업무처리 마감시한을 정해 자산평가사 공정가치 산출시간 및 사무관리사의 기준가 산출시간을 앞당겨 업무가 빨리 끝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특히 자산평가사는 금융상품의 가치평가 산출업무를 현행보다 30분 이상 빨리 끝낼 수 있도록 시스템 개발과 인력 보강에 투자하고 있다"면서 "금융시장 업무환경 개선에 선진적인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자산평가업무, 제도변화에 의견 반영됐으면

김동욱 실장은 업무의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만큼 보람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평가방법 및 평가가격의 적정성에 대한 설명 요청이 많다. 이는 대부분 가치평가 방법의 이해 부족에 따른 것"으로 "평가업무의 특성상 시장에서 거래되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접할 수 있고, 가치평가 및 검증업무를 통해 단기간에 많은 지식과 역량이 축적된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이 원하는 지식을 전달해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다양한 업무지원을 해주면서 금융기관의 업무처리에 많은 기여를 하는 것에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규제환경의 아쉬운 점에 대해 홍 본부장은 자산평가업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제도나 규제변경에 소외되는 일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금융투자회사들이 공정하고 정확한 금융상품 가치평가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는 만큼 자산평가사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금융환경의 규제 및 제도 변화에 자산평가사의 의견도 선제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산평가사가 어떤 업무를 하는 회사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면서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제도권 안에서 기여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널리 알려졌으면 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나 보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에프앤자산평가사는 금융기관 외에도 금융상품을 투자하는 일반 기업 및 개인 고객에게도 외부 벤더사를 통해 평가가격을 제공하기도 한다.
국내 벤더사로는 코스콤, 인포맥스 등이 있고 해외 벤더사는 블룸버그, 로이터 등이 있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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