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저유가의 역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경제에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제유가가 줄곧 하락세임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증대에 별다른 영향을 못 미칠 정도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각지도 못한 돌발변수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연초 배럴당 60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는 지난주 20달러 선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세계 2, 3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증산경쟁이 결정타였다. 3월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간 감산합의 결렬이 양국 간 치킨게임을 촉발한 것이다. 감산전략이 셰일석유를 파는 미국 좋은 일만 시킨다고 본 러시아가 '장군'을 부르자 사우디도 증산으로 '멍군'을 친 결과다. 당장 미국이 초비상이다. 50달러대로 복귀하지 않으면 미국 셰일업체들은 줄파산할 수밖에 없어서다.

일반적으로 저유가는 원유 수입국에 호재다. 특히 한국처럼 제조업에 기반한 수출주도 경제에선 유가 하락은 가뭄 끝 단비다. 저유가로 원가가 줄어 기업은 생산을 늘릴 수 있고, 생활물가가 내린 가계의 소비여력도 커지면서다. 지난 1986~1988년 저유가·저달러·저금리라는 3저 현상 덕에 한국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옛말이 됐다. 저유가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석유 수요를 줄이는 역설을 빚으면서 외려 디플레를 부추기고 있다.

저유가가 수요를 창출하는 일반적 경제원리가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택이 중요하다. 원유와 천연가스를 싼값에 사들일 수 있을 때 비축분을 충분히 확보해 두는 건 작은 대안이다.
더 중요한 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경제 기초체력을 다지는 일이다. 예컨대 당장 낮은 가격에 혹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높였다가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이 얼마 전 앞으로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위기가 빈발할 것으로 보고 "(그럴 때) 원전이 가장 안정적인 전력공급원"이라고 한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