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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급여 반납 말고 기부 챌린지 어때요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30 16:39

수정 2020.03.30 16:39

[여의도에서]급여 반납 말고 기부 챌린지 어때요
장차관 등 정무직 고위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들의 급여 반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 21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4개월간 장차관급 공무원 급여의 30%를 반납하겠다"고 하면서 고위 공무원과 공기업은 물론 정치권까지 동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연봉 4개월치의 30%인 2286만원을 반납한다. 정 총리는 1772만원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재형 감사원장은 각각 1340만원을 낸다. 장관급은 1303만원, 차관급은 1265만원을 각각 내놓는다. 급여반납 운동은 전국 지자체와 산하 공공기관 및 공기업 등 범공직 사회로 확산되면서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반납된 급여는 국고로 관리돼 기획재정부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쓸 계획으로 알려졌다.

급여반납의 취지는 '선의의 고통분담'이다. 정부는 고위 공무원의 자발적 참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취지가 선의였다고 반드시 결과도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위 공무원들은 반강제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급기야 전국공무원노조가 30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호일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관료제 공무원 사회에서 하위직 공무원은 임금반납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인사에 대한 위협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급여반납이 생각지도 못한 공직사회의 갈등과 불필요한 소모전을 만드는 모양새다. 위로부터 시작된 '선의의 운동'이 아래의 공기까지 포용하지 못한 결과다. 잡음이 깊어지면 선의라는 취지도 색이 바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가 민간으로 옮겨가는 것은 더 문제다. 일부 기업은 이런 분위기를 틈타 직원들에게 급여반납을 강요하고 있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곳도 많다. A기업 팀장은 "모두가 어려우니 우리(직원)가 스스로 급여를 깎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재난기본소득이 한쪽 주머니에서 들어와도 다른 쪽 주머니를 통해 나가게 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 재정이 '텅장'이라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 정부 곳간은 유래가 없는 '초슈퍼급'이다. 올해 예산은 사상 최대인 512조3000억원이다. 지난 17일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 11조7000억원을 포함, 코로나19 사태에 쏟는 돈만 30조원을 넘는다. 여기에다 2차 추경 편성도 이미 착수했다. 대부분 적자국채로 조달한 만큼 재정건전성 우려가 크지만 쓸 돈은 넘친다. 특히 총선을 보름 앞둔 지금 시점에서 정무직의 급여반납은 '선의로만 보기 힘들다'는 의심을 사기엔 딱 좋다.

급여반납보다는 차라리 기부를 하는 것은 어떨까. 국고로 들어가 관련 사업을 또 배정하길 기다려야 하는 급여반납보다는 기부가 절차적 면에서 훨씬 빠를 수 있다. 절차가 빨라지면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활성화라는 효과도 더 클 것이다.

기부자에게는 덤도 있다. 연말정산 시 기부금은 세액공제를 받는다. 기부를 하면 실제 내야 할 세금에서 15~30% 깎아주니 기부하는 사람도 좋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챌린지(도전)'라는 SNS 릴레이 문화가 자리 잡았다.
몇 년 전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기부 캠페인이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이런 세상에 급여반납은 요즘 트렌드로 보면 촌스럽다.
문 대통령이 '코로나 기부 챌린지'로 민관의 자발적 동참을 권유했다면 훨씬 세련된 접근법이 됐을 것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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