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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팬데믹과 도시의 실패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31 16:39

수정 2020.03.31 16:39

[여의나루]팬데믹과 도시의 실패
세계보건기구(WHO)가 3월 11일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이후 3월 31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77만명, 사망자는 3만6000명을 넘었다. 최근 들어 팬데믹의 주기가 빨라지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된 직접적 원인 중 하나는 도시화의 진전과 함께 대면접촉이 많고 밀도가 높은 콤팩트(Compact) 도시가 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추이를 보면 3월 31일 현재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중국, 독일 순으로 많고, 각국의 진앙지는 뉴욕, 우한, 밀라노와 같이 밀도 높은 글로벌 도시들이다. 우리의 경우도 확진자는 신천지 영향이 큰 대구와 경북을 제외하고도 도시화 비율과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충남-대전-부울경 등 경부축에 전체 88% 이상이 몰려 있다.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대응조치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재택근무, 원격강의, 휴교, 모임 및 행사 취소 등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시민들은 생활불편을 호소하고, 기업은 업무생산성 하락을 걱정하고 있으며, 서민경제는 추락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나야만 작동되는 콤팩트 도시를 만들어놓고 만나지 말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가속화되고 있는 팬데믹 발생주기와 경제사회적 충격의 강도를 감안할 때 대면접촉의 편리함과 효율 높은 경제활동을 위해 설계된 콤팩트 도시의 유용성은 한계에 왔다는 판단이다. 건강과 경제의 조화를 통해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비대면 언택트(untact) 도시로 도시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언택트 도시의 핵심 내용은 주택 중심의 지역생활권에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 등과 같은 비대면 유연근무제를 적극 수용하고, 그에 따른 활동의 불편과 사회성 상실로 인한 부작용이 없도록 도시의 토지이용과 물리적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유연근무제로 인해 지역생활권의 활동인구가 증가하면 식당, 커피숍, 커뮤니티 워크센터, 문화시설, 병원 등 도심시설이 옮겨올 수 있도록 토지이용 규제완화와 개발밀도를 상향 조정하고, 비대면 활동을 지원하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와 무인택배시스템 그리고 지역 내 근거리 이동에 적합한 자율주행 승차공유와 공유자전거 등을 위한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또한 사회성 상실에 대비하기 위해 스마트시티 사업과 소규모 도시재생 사업을 결합한 버츄얼 지역사회 활동네트워크도 구축해야 한다.

언택트 도시 출현으로 모든 근로자들이 주 하루라도 재택근무를 한다고 가정하면 출퇴근 시 대중교통 혼잡이 20% 감소해 전염병 감염으로부터 안전해지고, 도로의 교통혼잡도 줄어들어 사회적 비용도 줄어든다. 또한 근로자들은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육아 부담도 줄일 수 있으며, 기업은 상근인력 감소로 업무공간 확보에 드는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2017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업장에서 재택근무 비율은 4.7%로 미국의 30%에 많이 못 미친다고 한다. 하지만 90% 이상 참여 사업장에서 시행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서 언택트 도시가 활성화되고 대면 중심의 직장문화가 개선되면 유연근무제는 빠르게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의 명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인류의 역사를 코로나19 이전이 BC라면 이후는 AC라고 할 정도로 이번 사태를 인류역사의 변곡점으로 보고 있고, 지난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 코로나 포럼에 참석한 석학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대응하는 데 기존 도시는 실패했다.
건강과 경제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언택트 시티로 도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공론화가 시작될 시점이다.

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 전 한국교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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