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논단] 대통령의 짝퉁시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1 16:51

수정 2020.04.01 16:51

[fn논단] 대통령의 짝퉁시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구인이 '호모 마스크스'가 되었다. 확산의 진앙지가 된 교단의 교주는 국민 앞에 무릎까지 꿇었다. 구세주를 자처하던 그가 그날 손목에 찬 대통령 짝퉁시계 때문에 또 난리가 났다. 그날 밤, 드라마PD 구보씨는 악몽을 꾸었다.

마누라는 대통령이 되었고 본인은 대학의 연극영화과 교수였다. 그 바람에 구보씨 생활에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다.
마스크를 쓴 학생과 교수들이 '사인'을 받으러 연구실로 쇄도하는 바람에 경호원까지 붙어야 했다.

스타가 된 구보씨는 총장회의에 초대받았다. 모두가 대통령 알현하듯 굽신거렸다. 총장의 축하인사가 끝나고 부총장이 아뢰었다. "교수님, 요즘 대통령님 인기가 우주를 찌릅니다. 대통령님 시계 하나씩만 안될까요?" 그 순간 총장, 학장들이 물개 박수를 치며 구보씨 마누라 이름을 합창했다. '김경숙! 김경숙!' 평소 구보 교수를 광대라고 깔보던 자들이다.

구보씨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경호국장에게 시계 30개를 부탁했다. 옙, 써어! 다음날 경호국장이 나타나더니 무릎을 꿇고 빈손을 내밀었다. 구보씨는 벌컥 고함을 질렀다. "내가 대통령 남편이오!" "교수님! 그래서 더 원칙을 지키셔야 된답니다." 화가 난 구보씨는 청계천으로 달려가 시계 30개를 은밀히 주문했다. 며칠 후 '대통령시계님'을 들고 총장실로 달려가니 마침 출타 중이라 비서에게 맡겼다. 연구실에 오니 신임 경찰청장이 인사차 찾아왔다. "교수님! 요즘 각하 인기가 짱입니다. 짝퉁시계까지 나왔답니다. 경하드리옵니다."

저녁 때는 검찰총장이 나타나 각하 짝퉁시계 첩보가 있어서 검경 합동수사단을 만들기로 했다고 보고한다. 놀란 구보 교수는 다음날 새벽같이 시계를 찾으러 총장실로 달려갔다. 비서가 총장님께서 아침 일찍 전국 대학총장들과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대통령 시계 선물을 받을 거 같다며 기뻐하셨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아뿔싸! 총장 귀교 즉시 전화 달라! 하고서는 연구실에 오니 TV에 검경이 대통령 짝퉁시계 합동수사에 착수했다는 뉴스가 터져 나온다.

구보씨 오금이 저리는데 총장 비서의 전화가 울린다. 허겁지겁 총장실로 달려가니 총장이 양손에 시계 하나씩을 들고 흔들며 큰소리로 맞이한다.

"교수님, 오늘 대통령님 뵙고 좋은 선물까지 받았습니다. 잠깐 계세요. 저 손 좀 씻고 커피 한잔 하시죠." 총장이 시계를 풀어 책상 위에 놓고 화장실로 사라진다. 구보씨는 달려가 2개의 시계를 노려보다가 자신이 준 짝퉁시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퍽! 퍽! 유리에 금이 간다. 그 순간 책상 위에선 그가 준 짝퉁시계가 째깍째깍 가고 있다. 구보씨는 그것도 모른 채 금이 간 시계를 또다시 내리쳤다. 퍽!퍽! 순간 뒤에서 누군가 구보씨 등짝을 쳤다.
놀라 돌아보니 총장이 아니라 마누라 김경숙이다. 아! 꿈이었구나.

"아니 잠자다가 왜 남의 등짝을 쳐요." 자초지종을 듣고 난 마누라 김경숙이 고함을 친다.
"진짜 짝퉁은 그 시계가 아니라 그 교주야 교주!" "그리고 이 나라에 짝퉁이 한두 놈이야? 짝퉁장관, 짝퉁교수, 요샌 정당까지 짝퉁천지잖아. 그리고! 당신도 짝퉁남편이고!" 다시 마누라의 손바닥이 구보씨 등짝에 작렬했다.

이응진 경기대 한국드라마연구소 소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