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중앙은행의 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6 17:05

수정 2020.04.06 17:05

한국판 양적완화에 첫발
내친 김에 이주열 총재가
코로나 '전사'로 거듭나길
[곽인찬 칼럼]중앙은행의 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달라졌다. 보수적인 한은맨 같지 않다. 금리를 0%대로 내렸고, 한국판 양적완화까지 도입했다. 은행·증권사가 국채·공채를 사달라고 맡기면 무제한 사주기로 했다. 증권사 같은 비은행 금융사에 직접 대출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시장에 유동성을 넉넉히 공급하기 위해서다.


예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금리는 중앙은행이 가진 핵심 무기다. 누구라도 쉽게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바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필두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줄줄이 금리를 내리자 한은도 뒤따랐다. 미국과 유럽, 일본 같은 기축통화국이나 하는 줄 알았던 양적완화에도 첫발을 내디뎠다. 이 총재는 한은 역사를 새로 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촉발한 경제위기는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가을까지 기승을 부리면 대공황을 웃도는 충격을 줄 수도 있다. 확진자 수 세계 1위 미국에선 실업공포가 현실로 다가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재빨리 전임자 벤 버냉키가 벼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QE)라는 무기다. 선배 버냉키가 "기업 회사채까지 사주라"고 조언하자 군말 없이 따랐다. 연준이 회사채까지 매입하는 것은 금융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파월은 소통의 기술도 버냉키한테 배웠다. 그는 지난달 26일 NBC의 '투데이'라는 아침 프로그램에 나와 무제한 양적완화가 무엇인지, 연준이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을 설명했다. 연준 의장의 아침방송 출연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이 또한 버냉키가 길을 냈다. 버냉키는 2009년 3월 CBS 시사프로그램 '60분'에 출연했다. 당시 진행자가 "연준 의장이 이례적으로 TV 회견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버냉키는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이번 회견은 내가 미국 국민들에게 직접 말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답했다. 소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버냉키는 2010년 11월 워싱턴포스트지에 '경제 살리기-연준은 무엇을 했고 왜 했는가'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했다.

나는 이주열 총재가 시장과 직접 소통하는 중앙은행 총재가 되길 바란다. 금융통화위원회 끝나고 기자간담회도 물론 소중한 자리다. 하지만 TV에 나와 국민을 상대로 직접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은법에는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시장기능을 중시하여야 한다"(4조②항)는 조항이 있다. 이를 시장과 소통하라는 권고로 폭넓게 해석하고 싶다.

올해로 설립 107년을 맞은 연준은 종래 신비주의를 고수했다. 버냉키는 음흉한 스핑크스 같은 이미지를 떨어냈다. 파월의 '투데이' 인터뷰를 들어보라. 연준 의장 특유의 모호한 어투는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얘기다. 올해로 설립 70년을 맞은 한은은 고상한 선비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곱게 보면 신중하지만 밉게 보면 고루하다. 한은도 21세기형으로 변신이 필요하다. 상징적으로 총재가 TV에 나와서 한국판 양적완화를 설명하고, 시청자와 질의응답도 하면 좋겠다.

코로나 경제위기가 터지자 온 시선이 한은과 이 총재에게 쏠렸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뜻이다. 한은은 힘 센 조직이다. 이걸 한은맨들만 모르는 듯하다. 쓰라고 준 무기를 쟁여두지 말고 필요할 땐 꺼내 써야 한다.
한국은 코로나19 방역의 모범국으로 꼽힌다. 경제위기 탈출도 한국이 일등국이 될 수 있다.
그 선두에 한은이 서지 말란 법이 없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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