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선거에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정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6 17:13

수정 2020.04.06 17:16

[만 18세, 투표소 가는길에]
【편집자주】만 18세의 생애 첫 투표, 그 시작을 파이낸셜뉴스가 응원합니다. 4.15 총선 페이지 오픈을 맞아 기획칼럼 '만 18세, 투표소 가는 길에'를 연재합니다. 진정한 민주시민의 권리인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만 18세들에게도 축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어! 나도 왔다. 내 것도 있어."

주말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보 속에서 제 이름의 공보를 찾은 네가 보인, 환호에 가까운 반가운 반응에 뜬금없었다. 더구나 모든 식구가 손을 주~욱 선거공보의 봉투를 뜯고 있던 차에, 너는 가위까지 꺼내 조심스레 봉투를 자르더니 한 장, 한 장 공보물을 펼쳐보더라. 더 뜬금없다.
뭐야. 새삼스럽게 신기해하고, 심각해지는 저 태도는.

"그거 봐서는 몰라. 거기는 잘하겠다는 못 지킬 약속만 잔뜩 있어. 그거 보고 투표하면 망해. 그리고 네 것이 다르지도 않아. 똑같으니 이리 와서 같이 봐."

나는 늘 그랬었거든. 내 이름의 선거 공보를 뜯어본 일도 거의 없었다.

"이것 봐. 이 사람은 말이야. 지난번에도 국회의원이었어. 내가 취재하느라 몇 번 만나 봤어. 이 정당은 말이야…."

일장 훈시를 시작하려는 차에 네 한마디에 사실 뜨악했다.

"아니야. 내가 찾아볼게. 이름 보고, 인터넷 찾아보고, 신문기사도 보고 자기가 올린 다른 자료들도 찾아볼게. 그리고 궁금하면 물어볼게. 선거는 일 시킬 사람 뽑는 거라며? 옛날 성적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뭐 할지도 봐야지. 판단은 내가 할게."

그리고는 공보물을 싸 들고 방으로 휑하고 가버린 네 뒷모습에 우리 식구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아차 싶네. 과거 기준으로, 내가 봤던 경험만 잣대로 삼아 미래를 재단하려던 습관이 너한테 딱 걸린 거네. 결국 또 '라떼는 말이야' 하다 보기 좋게 거절당한 셈이야. 미안해.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그랬구나. 요즘 유행하는 말대로 선거에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세상 어찌 돌아가는 줄 모르고, 고등학교 3학년까지 교실에서 교과서만 보고 있던 어린애가 아니었구나. 선거가 어떤 것인지, 표를 줄 사람을 선택하는 사람의 기준도 나름 정해놨구나.

그래, 너의 세대를 만들어가면서 일 시킬 사람을 충분히 고민한 뒤 잘 선택해주길 바라. 그 선택이 성공하길 바란다.

사실 나는 수십 번의 선거에서 매번 선거 뒤 나의 선택에 후회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내 선택지가 당선되면 기대만큼 잘하지 못하는 것에, 내 선택지가 낙선하면 사표를 만든 것에 4~5년 내내 후회의 마음이 있었다.

선택하기 전에 고민했어야 하는데, 돌아보니 나는 20대 이후로는 선거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아.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이 정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신중히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그 습관대로 표를 던졌었다.

네 말대로 그동안 뭐 했는지, 앞으로 뭐 할 것인지를 균형 있게 고민했어야 하는데 그걸 안 했네. 선거를 습관처럼 했구나.

/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네 대답을 들으면서 잊고 있던 것이 새삼 기억났다. 선거는 투표장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를 알아보고 공약을 꼼꼼히 살피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대학 때 몇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학생회에서 늘 입에 달고 있던 말이었는데, 정작 성인이 돼서는 잊고 살았네. 어쩌면 그래서 선거 후에 후회하게 됐었나 보다.

너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너의 선택은 성공하길 바란다. 네가 신중히 고민한 결과가 너와 나, 우리의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너의 투표와 선거의 결과가 다르더라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했다면 그것으로 다음번 선거를 위한 투자를 한 것일 테니. 선거는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게. 이미 너는 계획이 다 있으니 걱정 따위 필요 없겠다. 그저 잘 부탁할 뿐. 너희 또래들이 선거의 결과를 바꿀 것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신중한 고민과 현명한 선택을. 그리고 성공하는 선택을.

한 가지 부탁이라면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챙겨서 투표장에 가라. 건강은 너무 중요하니까.

이구순 부국장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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