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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한국은행의 존재 의미에 대하여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8 16:34

수정 2020.04.08 16:34

[fn논단] 한국은행의 존재 의미에 대하여
지금과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코로나19 확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 사태가 진정되면 우리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한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자. 가장 큰 문제는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그 정도의 신속성이면 되는 것이냐는 점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너무 느렸다. 특히 기준금리를 내릴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가장 적절한 시기는 지난 2월 27일 정기 금융통화위원회였다고 생각된다. 당시 금통위가 열리는 비슷한 시간에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월 27일 오전 9시 기준 확진자 수는 총 1595명으로 449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시장에 공포감이 만연했다. 그러나 금통위는 금리를 동결했다. 마지막 인하 타이밍은 3월 3일(현지시간) 미국 연준이 긴급하게 임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미국 정책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을 때다. 한은은 항상 금리격차로 인한 자본유출을 우려하던 상황이었다. 그것이 해소되는 순간이었기에 우리도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그러나 금통위는 침묵했다. 연준이 두 번째 임시 FOMC 회의를 열어 정책금리를 1%포인트를 추가 인하하고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인 3월 16일 오후가 돼서야 금리인하를 결정했다. 이미 모든 시장은 패닉에 빠져버린 뒤였다.

두 번째 이슈는 한은이 이따금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대표적 예가 '양적완화'다. 양적완화는 금리가 더 내려갈 수 없는, 즉 제로 금리까지 도달하고 나서 대체수단이 없을 때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하고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양적완화를 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정확히는 신용경색이 우려되는 특정 부문에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한은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한다. 즉 한은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흔히 한은이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계와 기업의 민간부문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할 수는 없다. 만약 무슨 이유로 금융기관에서 민간으로 가는 유동성 경로가 막혀 있다면, 한은이 아무리 많은 유동성을 공급해도 시중에 돈은 돌지 않는다. 아마 최근 정부에서 금융권에 소상공인과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독려하면서 고의만 아니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이런 우려가 실제 존재한다고 보인다. 여기서 중앙은행의 전통적이고 교과서적 역할은 금융권에 대한 유동성 공급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어쩌면 그런 제한적 기능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잘했든 못했든 경제정책의 중요한 축인 한은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도 높다.
금융·통화 정책의 최대 덕목은 민간 주체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그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다. 한은의 공식 비전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글로벌 선진 중앙은행'이다.
글로벌이나 선진은 잘 모르겠고, 한은이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한은의 존재 의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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