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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환경서 하루 300㎞ 운전… "레이서 아닙니다, 타이어 만들어요"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성초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8 17:29

수정 2020.04.08 18:01

한국타이어 테스트 드라이버
수십가지 보완 거쳐 올라와도  
'실차 평가' 통과 못하면  
다시 연구소로 돌려보내
맨홀·급커브·빙판 도로까지
운전자 입장서 타이어 테스트
아주 미세한 차이도 잡아내
거친 노면 달리니 사고가 가장 걱정
주행실력 기본… 감각도 예민해야
실제 테스트 투입까지 5년간 훈련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내 G트랙에서 타이어 실차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내 G트랙에서 타이어 실차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박성연 연구개발본부 실차평가팀 책임연구원은 국내에서 유일한 여성 타이어 테스트 드라이버다.
한국타이어의 박성연 연구개발본부 실차평가팀 책임연구원은 국내에서 유일한 여성 타이어 테스트 드라이버다.
【 금산(충남)=성초롱 기자】 7만5000㎞. 한 명의 타이어 테스트 드라이버가 1년간 주행하는 거리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한 개의 타이어가 제품으로 출시되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마지막 관문을 지키는 '문지기'다.
이들 드라이버가 책임지는 실차 평가를 통과해야만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 개발 단계에서 수십가지의 보완과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 올라온 타이어도 30여명으로 구성된 실차평가팀의 합격점을 받아야만 제품으로 선보인다. 이들은 타이어의 승차감과 정숙성, 조종성 등 성능과 함께 주행 시 일어날 수 있는 사고 가능성까지 확인하는 역할로, 운전자의 안전까지 책임지고 있다.

■하루 300km…6시간 연속 주행도

8일 충남 금산에 위치한 한국타이어 공장 내 G트랙에서 만난 박성연 연구개발본부 실차평가팀 책임연구원은 실차 평가를 "예민한 작업"으로 소개했다.

계측 평가(Objective)와 감성 평가(Subjective)로 나뉘는 실차 평가에서 테스트 드라이버는 감성 평가를 주로 담당한다. 객관적인 수치보다는 드라이버 개인적인 평가가 중요한 단계다. 임 연구원은 "테스트 드라이버는 운전자와 동승자 입장에서 소비자 감성과 타이어 성능을 세세하게 구분해내야 한다. 미세한 차이점 등을 파악하기 위해 테스트 당시 높은 집중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테스트 드라이버의 합격을 받지 못한 타이어는 제작 초기 단계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연구소에서 다양한 테스트를 통과해 올라온 타이어지만 운전자 입장에서 평가하는 것은 테스트 드라이버뿐이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총 7만평 규모로 구성된 한국타이어 G트랙을 매일 짧게는 100㎞에서 300㎞ 이상을 주행한다.

크게 일반(dry)노면과 젖은(wet) 노면으로 구분된 트랙은 맨홀, 거친 아스팔트 등 거친 도로와 급커브 도로, 수심 1㎜의 도로 등 다양한 환경의 주행환경을 연출한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이 트랙에서 시속 140㎞의 고속 주행에서 곡선 주행, 급제동까지 다양한 상황을 시험한다.

한명의 테스트 드라이버가 1년 간 담당하는 시험은 300~400세트 가량. 신제품 개발을 위한 테스트 외에 경쟁사 모델 비교를 통한 테스트까지 더해진 수치다.

트랙에서 근무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꼽는 가장 어려운 항목은 제동평가다. 다양한 노면에서의 제동 거리를 재고, 밀림 등의 세밀한 부분을 감성적으로 봐야하는 제동평가의 경우 6시간씩 연속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국내 유일의 여성 타이어 테스트 드라이버이기도 한 박 연구원은 "급제동 등 다양한 주행을 테스트해야하는 직업 특성상 체력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다"며 "체력 유지를 위해 복싱 등 개인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테스트 드라이버의 개인적인 몸 상태 등 주관적인 요소들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몸이 좋지 않은 날에는 평가에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실전 투입까지 5년간 교육

타이어 테스트 드라이버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은 당연 운전 실력이다. 타이어 연구소 실험실의 테스트와 계측 테스트를 통과했더라도 실제 주행에서의 돌발 상황을 미리 체험하는 것도 테스트 드라이버의 몫이기 때문이다.

개발 과정의 타이어를 시험하는 테스트 드라이버는 주행 중 갑자기 멈추거나 한쪽으로 쏠리는 등 예기치 못한 사고에 항상 노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준급의 운전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운전 실력에 대한 교육은 필수 교육과정으로 포함된다.

주행 실력과 함께 감성 테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감각도 요구된다.

감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타이어는 다시 연구소로 돌려 보내져 타이어 패턴 디자인을 다시 작업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한데, 테스트 드라이버의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실제 테스트에 투입되기까지 통상 5년 가량의 연습과 교육기간을 거친다. 한국타이어도 사내 교육커리큘럼으로 테스트 드라이버를 양성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차량을 탑승했을때 타이어에 대한 성능을 느끼고 알아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며 "선배들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많이 타보는 것만이 감각을 살릴 수 있어 많은 경험과 연습, 연구 등 노력이 요구되는 직업이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소비자 트렌드 등 연구도 테스트 드라이버의 필수 업무가 됐다. 새로운 차량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각 모델별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해 시험 주행 시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도 테스트 드라이버의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세단과 스포츠카는 분명 소비자들이 원하는 부분이 달라 이런 부분을 반영해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고 위험도 불사

매일 운전대를 잡는 테스트 드라이버에게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역시 사고다. 100km 이상의 주행이 주를 이루고, 평이한 노면보다는 거친 노면을 달려야하는 테스트 드라이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실제 눈길이나 빙판길 주행 테스트에선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박 연구원도 "눈 앞에서 동료가 사고 당한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실차평가팀 팀원들은 "우리가 없으면 좋은 타이어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한다. 실제로 성능 테스트의 마지막 단계인 실차 평가는 타이어 기업의 제품력을 사실상 결정하는 중요한 단계다.


이같은 이유에서 글로벌 타이어 기업 대다수가 모두 자체적으로 실차 평가팀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실차 평가팀을 보유하고 있고, 지난 1985년부터 자체 주행 시험장을 운영해왔다.
아울러 한국 타이어는 유럽 공인 시험 기구인 스페인 자동차 성능 시험 기구(IDIADA)에 테크니컬 오피스를 설립해 고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핀란드 이발로 지역에서는 겨울용 타이어 전용 테스트 월드를 운영 중이다.

longss@fnnews.com 성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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