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서초포럼

[여의나루] 위기에서 드러나는 전문가의 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9 17:23

수정 2020.04.09 17:23

[여의나루] 위기에서 드러나는 전문가의 힘
필자는 대학에 입학한 뒤 한 친한 고교 동기가 한 말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너같이 공부 잘하는 애들이 이과를 가야 하는데." 그때는 그 친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돈 많이 벌 수 있는 상과대'를 가고자 했던 어린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온통 뒤집어놓을 듯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금, 필자는 다시 그 친구의 말을 떠올린다. 지금처럼 전문가의 목소리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가 없기 때문이다. 저녁 모임이 거의 없어진 지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이 텔레비전 뉴스를 전례 없이 많이 보게 된다.
그때마다 들리는 차분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거의 매일 공개 발표를 하는 중앙방역대책본부장과 부본부장 그리고 앵커의 질문에 조곤조곤 답하는 감염학과 교수들이 그들이다. 필자가 이들의 목소리에 신뢰를 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깊은 전문성을 근간으로 하여 지금 사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을 어떠한 과장도 편견도 없이 차분하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의 발표와 충고를 큰 기준으로 삼아서 많은 SNS를 통해 전달되는 한없는 비관적·낙관적 주장과 정보들을 걸러내고 있다. 이런 미증유의 위기 때에 약해지기 쉬운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수많은 뉴스와 정보들은 곧잘 '가짜 뉴스'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전문가들의 소중한 분석과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목소리들도 종종 들려온다. 위기를 수습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는 명분을 등에 업고 정치적 행보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과 정부 입장만 방어하고 홍보하려는 고위 공직자들 그리고 이들의 이런 태도를 헐뜯는 데만 몰두하는 야당과 비판 언론들의 목소리들이다. 필자가 이들의 목소리에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정확한 사실의 분석과 판단보다는 다른 의도가 앞서 있기에 대부분 객관성을 잃게 되고, 그래서 낙관적·비관적 견해 어느 한쪽에 기울어진 정보만 전달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에는 어쩌면 이런 주장들이 우리들의 귀에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스스로들도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의 강한 주장에 공명하기가 더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요즈음 더욱 큰 신뢰와 존경심을 갖게 되고, 앞에서 언급한 소싯적 결정을 더 후회하게 되는 때는 바로 이들 전문가가 보여주는 희생정신을 접할 때다. 두 달이 넘도록 위세를 떨치고 있는 전례 없는 역병에 맞서 자신들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환자들 돌보기에 애쓰는 숨은 영웅들의 지친 모습이 가장 큰 예이리라. 이뿐이랴. 자신들의 생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장으로 달려가서 지친 의료진의 궂은일을 대신하려 나선 소위 '의병'이 되고 있는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도 있다. 위기 수습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필자의 전공 선택이 후회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인 것이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위기 때는 필자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이런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여겨진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그렇게도 무섭던 코로나19 전파 추세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보통 사람들의 '올바른 자세'에서 나온 힘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위기를 극복했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들은 이렇게도 소중했던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쉽게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래서 다음에 맞게 될 위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전문가의 견해보다는 정치적 견해가 우세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정치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김도훈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