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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없으면 이겼을까"…비주류된 '보수당' 활로는 어디

뉴스1

입력 2020.04.18 06:01

수정 2020.04.18 06:01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입장을 발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황 대표는 "총선 결과 책임, 모든 당직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2020.4.16/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입장을 발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황 대표는 "총선 결과 책임, 모든 당직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2020.4.16/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미래를 외치며 통합에 나섰지만 미래도 통합도 없었다. 그 결과 보수 본산을 자처하는 '미래통합당'은 역대 최악의 총선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추세도 좋지 않다. 지난 2004년부터 이번까지 다섯 번의 총선거를 치르는 동안 의석수는 우하향이다. 보수의 몰락을 넘어 소멸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들이 어떤 활로를 찾을지 관심이 쏠린다.

4·15 총선에서 통합당은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포함해 103석을 얻었다. 지역구 후보만 낸 통합당만 놓고 보면 결과는 더 참담하다. 전국 253곳 중 84곳만 차지했기 때문. 더불어민주당 163석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20년간 통합당이 지역구에서 100석 미만을 차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았던 2004년에도 100석을 건진 통합당이다.

이런 무참한 결과의 원인으로 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Δ공천 잡음 Δ막말 논란 등이 꼽혔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바뀐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도 전술도 전무한 결과"라며 "선거 이틀째지만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세상이 변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한국사회의 주류가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이 '진보' 진영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건 당시 '386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덕이다. 십수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사회를 이끄는 기득권이 됐고, 이들의 자리에는 더 자유롭고 힘이 넘치는 새로운 20~40대들로 채워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4·15 총선 유권자 비율을 보면 Δ10대 115만명 Δ20대 680만명 Δ30대 699만명 Δ40대 836만명 Δ50대 865만명 Δ60대 이상 1201만명이다.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가 50대에 접어들면서 진보성향의 10~50대 인구가 보수색이 짙은 60대 이상 유권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이다.

민주당은 지지층을 넘어 중도층 유권자들을 제대로 공략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IT 인프라를 활용한 '소통'에 능한 데다, 정책이나 구상을 전달하는 방식도 세련됐다. 이번 총선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분석해 유권자들을 만날 정도였다. 선거전략을 진두지휘했던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과학적인 분석으로 유권자의 동향을 파악해 꿈의 '180석'을 달성하는데 일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전 국무총리라는 막강한 '구심점'도 있었다.

통합당은 정반대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선거 막판 50% 중후반까지 치고 올랐지만 표심은 다를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 품었다. 사회적 합의가 끝난 과거 사건을 구태여 꺼내 드는 것도 모자라 '막말'로 표출하면서 선거 막판 대형 악재도 자초했다.

중도·보수 통합만 이루면 낙승할 수 있다는 환상도 마찬가지다.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는 황교안 대표의 지지기반은 약했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영입은 다급했다. 전권을 준다며 영입한 김형오 공관위원장은 공천을 마무리하기 직전 자진사퇴했다. 화학적 결합이 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에 '차떼기당'이란 오명으로 선거 직전 위기를 겪었던 한나라당(통합당 전신)은 지금과 달랐다. 선거 22일여를 앞두고 '천막'으로 들어가 '박근혜'를 구심점으로 똘똘 뭉친 것이다. 그 결과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121석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통합당은 이제 '그라운드 제로'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당장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태를 수습할 것으로 보인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다. 그는 당 운영에 관한 전권을 주면 직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낙천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생환한 이들도 힘을 보탠다. 강릉 권성동 당선인은 복당신청을 하며 원내대표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홍준표 당선인도 복당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당장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통합당 쇄신에 나설 인물들의 면면이 수도권의 20~50대 중산층에 더해 이념적 중도층까지 흡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코로나19가 없고, 공천을 성공적으로 하고, 더 나은 당 대표와 선대위원장이 있고, 막말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통합당이 민주당의 과반 의석을 저지할 수 있었을까"라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성호 프리랜서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력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한국사회 산업화 세력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확실히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며 "이제는 '소통'이나 '더불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민주화 세력이 주류고 이는 세대 구조상 최소 10년, 최대 20년은 더 갈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이런 지적을 뒤집어 생각하면 통합당의 활로도 찾을 수 있다. 굳건한 '보수'의 가치를 자유롭고 유연하게 소통하며 확산하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딱딱한, 구태, 낡은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대선까지 2년 남았는데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둔다면 승패를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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