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코로나 공적자금을 조성하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20 17:22

수정 2020.04.20 17:22

외환위기 때 경제 살린 밑천
'죽음의 계곡' 건널 브리지론
가성비 따지면 괜찮은 시도
[곽인찬 칼럼] 코로나 공적자금을 조성하자
외환위기 때 김대중정부는 공적자금을 조성했다. 1차로 64조원, 2차로 40조원을 꾸렸다. 회수해서 다시 투입한 돈까지 합치면 총 160조원이 넘는다. 이 돈으로 외환위기라는 죽음의 계곡을 건넜다. 2000년 2차 공적자금 조성은 쉽지 않았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은 공적자금을 마구잡이로 퍼부었다며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할 수 없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초 국회를 통과했다. …논란이 있었지만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공적자금은 그 손실을 예상하고 조성된 것이었다. 다행히 회수율이 점점 늘어 2006년부터 50%를 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서전(2권)에서 회고한 내용이다.

이후 회수율은 더 높아졌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올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4월)에 따르면 회수율은 70%에 육박한다. 공자위는 "공적자금 168조7000억원 중 2019년 12월 말까지 116조8000억원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2009년엔 이명박정부가 구조조정기금이란 이름으로 공적자금을 꾸렸다. 규모는 약 6조2000억원으로, 외환위기 때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하지만 회수율은 107%에 이른다. 손해는커녕 되레 이문을 남긴 셈이다.

공적자금은 늘 재원이 골치다. 외환위기 때는 주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발행한 채권에 의지했다. 정부는 국회 동의를 받아 지급보증을 섰다. 그렇게 해서 예보가 약 111조원, 캠코가 39조원을 모았다. 금융위기 때는 캠코에 구조조정기금을 설치하는 방식을 취했다.

용도는 금융사 지원이 절대적이다. 예보는 금융사에 대한 출자, 예금대지급, 출연 순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캠코는 금융사 부실채권 매입에 주력했다. 은행, 종합금융사, 증권·투신사 등이 혜택을 입었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금융위기 때 처음 비금융권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해운사에 4736억원, 건설사에 527억원을 출자했다. 액수는 작지만 코로나 경제위기 해법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나는 코로나 공적자금 조성을 문재인정부가 적극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이번엔 주로 기업 지원용이다. 공짜로 퍼주란 얘기가 아니다. 다만 싼 이자로, 상환은 2~3년 거치 조건이면 좋겠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일종의 브리지론이다. 외환·금융위기 경험에 비추면 공적자금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정부는 이미 150조원 규모의 대형 지원책을 마련했다고 해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돈은 공적자금처럼 정부가 재량껏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부는 금융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생색만 내려 한다. 그러니까 자꾸 현장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난다.

더불어민주당이 코로나 공적자금 조성을 주도해도 좋겠다. 국난 극복 슬로건을 앞세워 총선에서 이겼으니 명분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기업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그 여파로 기업이 무너지면 일자리도 무너진다. 대기업 특혜 아니냐고? 특혜는 무슨. 그럼 죄없는 항공사, 여행사가 쓰러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는데 정부·여당이 구경만 하라는 건가.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 위기를 90년 전 대공황급으로 평가했다. 대책도 대공황급으로 짜는 게 맞다.
여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외환위기급에도 못 미친다. 문 대통령은 '관성과 통념'을 뛰어넘는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코로나 공적자금이 딱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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