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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잘날수록 겸손해야 한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23 16:38

수정 2020.04.23 16:38

[여의나루] 잘날수록 겸손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친구가 있었다. 공부를 잘한 것은 분명한데, 진정한 1등인지에는 논란이 있었다. 성적을 산정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90점 이상은 '수', 80점 이상은 '우', 70점 이상은 '미', 이런 식으로 분류하고, 다시 '수'는 5점, '우'는 4점, '미'는 3점을 배정했다. 이렇게 산정된 점수를 합산한 후 과목 수로 나눠 5점 만점에 가장 가까운 순서로 석차가 결정됐다.

이런 방식의 석차 결정은 실제 평균점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전 과목에서 모두 90점을 받은 친구는 흔히 말하는 '올 수'로 전교 1등이 되는데, 다른 과목은 전부 100점을 받았지만 한 과목에서 89점을 받은 친구는 평균점수가 높은데도 전교 1등이 되지 못한다. 당시에는 전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학생을 우등생으로 인정한 것 같은데, 최근에는 한 과목만 잘해도 영재라고 해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공부를 잘하는 것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서 갑자기 40여년 전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지역구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63석을 차지, 87석을 얻은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을 압도했다. 그러나 정당에 대한 지지 투표라고 할 수 있는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는 여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33.35%로 17석을 차지한 것에 반해, 제1야당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이 33.84%로 19석을 차지했다.

지역구 후보를 포함한 전체 총선 결과는 여당이 큰 차이로 승리했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이 팽팽하게 맞섰다. 여당의 압승은 지역구 선거가 승자독식의 구조이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지 국민이 결코 어느 한쪽을 집중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니다.

국민은 경험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거를 통해 견제와 균형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결코 절대권력을 만들지 않는다. 이런 국민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

다시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면, 당시 전교 1등을 차지하던 친구는 뜻밖에도 다른 동기들의 질시를 받지 않았다. 그는 성적산정 방식 때문에 자신이 1등을 차지한 것을 미안해하고 항상 겸손했다. 잘났으면서도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 반장도 아닌 부반장을 자원해서 봉사하고,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렸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동기들은 여전히 그를 전교 1등으로 인정하고 있다. 겸손과 배려의 마음을 높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여야 앞에는 공수처장 임명, 사법부와 검찰개혁 관련 법안 등 많은 난제가 놓여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4+1이라는 여당의 법안 통과 방식에 많은 국민이 우려를 표시했다.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수가 국민의 지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착각에 빠져 오만하면 국민은 반드시 이를 심판할 것이다.


여당은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야당들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면서 배려해야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영국의 역사가 액튼 경의 말이 제21대 국회에서는 틀린 말이 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설마 나이 어린 까까머리 고등학생조차 깨닫고 실천하던 겸손과 배려의 미덕을 우리 사회의 최고 지도층에서 모르지 않을 거라 믿고 싶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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