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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싫은 책을 읽는 즐거움 [김성호의 Yo! Run! Check!]

[김성호의 Yo! Run! Check! 3] 김헌식 '남의 불행을 보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파이낸셜뉴스] '사짜'를 경계한다.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팔아먹는 지적사기꾼을 경멸한다. 언론이나 출판물을 통해 수도 없이 접해온 가짜 지식인과 거짓 전문가를 혐오한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이 세상에 끼친 폐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자기계발서와 흔한 상식서적을 의식적으로 피해온 건 그래서다. 대중문화평론가나 문화비평가 같은 이도 저도 아닌 직함을 꺼려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뚜렷한 전문성 없이 그럴듯한 이야기를 묶어 풀어놓는 이들을 나는 너무나 많이 만나왔던 것이다.

나의 이런 편견을 페이퍼로드에서 나온 책 한 권이 조금쯤 허물어줬다. 김헌식 평론가가 지은 <남의 불행을 보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란 책으로, 일상에서 쉽게 맞닥뜨리는 스물아홉 가지 궁금증을 짧은 칼럼으로 풀어나갔다. 대중문화평론가란 직함부터 어디서 많이 접한 소재에 이르기까지 온통 끌리지 않는 구석뿐이었으나, 나는 읽을 책을 고르는 나만의 규칙에 따라 이 책을 읽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책 표지 ⓒ페이퍼로드
책 표지 ⓒ페이퍼로드

내가 책을 고르는 규칙

여기서 잠깐,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책을 고르는 규칙을 소개한다. 내 집에는 책장이 두 개 있는데, 하나엔 읽은 책이 다른 하나엔 읽지 않은 책들이 꽂혀 있다. 책장 하나는 언제고 다시 꺼내볼 만한, 쉽게 말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들의 것이다. 이곳에 들지 못한 책은 관심을 보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처분되거나 헌책방에 팔려나가는데 이런 책장은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것이다.

내게 더 중요한 건 읽지 않은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다. 여기엔 가족들이 사온 책이나 여기저기서 보내온 책들이 특별한 규칙 없이 마구잡이로 꽂혀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이곳에서 새로 읽을 책을 정하는데, 이 책장에서 가장 읽고 싶지 않은 책이 나의 선택을 받는다.

난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훌륭함 가운데 상당수가 이 규칙으로부터 잉태됐다고 믿는다. 보통 사람은 나이가 들며 자기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좋은 것은 가까이 하고 싫은 것을 멀리하며 차츰 자신의 취향을 발전시킨다. 이건 반대로 자신의 경계를 굳게 하는 일이기도 한데, 취향이 굳어질수록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책장에서 가장 읽고 싶지 않은 책을 고르는 건 일종의 고행이며 훈련이다. 이 규칙을 고수하는 한 나는 가장 원하는 책을 평생 읽지 못할 것이니 고통스럽지만, 내가 원치 않는 세상과 꾸준히 마주하는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이번에 그러했듯 책을 읽기 전의 나와 달라지는 기분 좋은 경험도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시각으로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남의 불행을 보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를 쓴 김헌식은 정책학을 전공한 박사 출신으로 다수 매체를 통해 사회문화현상을 풀이한 평론가다. 여기저기 제가 쓴 칼럼을 묶어 몇 차례 책도 출간했는데, 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될 듯하다.

책은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제각기 '일상과 편견' '현상과 내막' '문화와 심리' '유혹과 의혹' '사회와 굴레'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뚜렷한 지향 없이 쓰인 단발성 칼럼 모음집에 가깝다.

각 칼럼은 혈액형 성격론과 섹스리스 증가현상, 탈모증 환자를 조롱하는 분위기, 일간베스트의 동력, 한류의 실체, 복권을 사는 이유 등 누구나 쉽게 접하는 주제와 관심사를 대상으로 했다. 잡지나 신문 한 귀퉁이에서 가볍게 읽을 만한 내용이다. 쉽고 재미있는 주제에 다양한 통계와 사례인용이 설득력을 더한다. 그리고 가끔은 흥미로운 시각으로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뒷담화는 평판 퍼트리기의 심리와 닿아 있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볼 때, 평판 퍼뜨리기는 공동체의 원활한 유지와 관련이 있다. 존 휘트필드는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롱하는가>에서 선행을 장려하고 악행을 방지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평판의 힘이라고 했다. 평판은 칭찬, 소문, 뒷담화 등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 뒷담화의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조직이나 공동체의 가치 및 규범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사람에 대한 품성이나 인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거꾸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가 바로 이 부분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담은 대단히 중요한데, 주로 타인의 도덕적, 사회적 위반 행위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타인의 선행에 관한 한담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한담은 타인의 관심을 협력의 위반과 사회적 규범의 훼손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경찰이나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직접적 징벌은 비용이 많이 드는 데 반해 소규모 사회의 경우 한담은 저비용으로도 비협력자 무리의 행동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 -57, 58p

위는 집단주의 문화와 뒷담화에 대한 글의 일부다. 뒷담화를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로 바라보던 기존의 시각을 뒤집고 사회적 의미를 끌어냈다. 뒷담화와 평판을 연결 짓고 평판을 퍼뜨리는 행위가 가져오는 사회적 의미를 도출해냄으로써 읽는 사람이 뒷담화의 긍정적 효과를 생각하게 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나시르 가에미는 <광기의 리더십>에서 위기 시에는 정상에서 벗어난 리더가 큰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처칠 총리 역시 심각한 우울증과 가벼운 조증을 반복적으로 앓았다. 그는 '다가올 독일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며 영국의 재무장을 주장했지만, 주변국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정치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날에 대비한 그의 현실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정신의학자 앤서니 스토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40년의 위협적인 여름, 우리를 결집시키고 격려하는 처칠의 저항적 언어에는 정서적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설득력 있었던 것은 그가 평생 동안 자기 자신의 절망과 싸워왔기 때문이다." -128, 129p

안정되지 않은 리더가 반대의 경우보다 도리어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흥미롭다. 저자는 처칠과 같은 사례는 물론, 안정된 심리상태의 리더들이 잘못된 결단을 내린 사례를 제시해 독자의 통념에 반하는 진실을 들려준다.
익숙한 것을 더욱 익숙하게 하는 통념에 저항하여, 책은 독자들을 불편함이 주는 이로움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건 아주 특별한 즐거움을 동반한다.

읽기 싫은 책을 꺼내들며 내가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