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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긴급재난지원금이 남긴 숙제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07 17:54

수정 2020.05.07 17:54

[여의나루] 긴급재난지원금이 남긴 숙제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위기에 대응해 국민생활의 안정과 위축된 경제 회복을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국민 안전망'입니다."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다. 이번 지원금 지급은 정부의 말처럼 '유례없는 위기에 대응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목적은 국민이 그 돈을 소비해 경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국방예산 등 삭감과 국채발행으로 마련한 14조원에 상응하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지 미지수다.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정부의 '돈 뿌리기'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ESA of 2008), 오바마 행정부(ARRA of 2009)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구호와 경제안정 등 법(CARES Act of 2020)'을 시행 중이다. 법률마다 차이가 있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금 지급, 세금혜택 부여, 필요한 분야에 대한 정부지원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한다.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실효성에 대한 논쟁이 일었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직접지원을 받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이다. 현금 지급이든 세금 환급이든 마찬가지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구호법에서도 개인소득 7만5000달러 이하인 경우에만 1200달러를 직접지원하고 7만5000달러를 넘는 소득자는 일정 비율로 감액하고, 9만9000달러를 넘는 고소득자는 지원에서 제외한다. 경기부양이 궁극적 목적이지만 필요한 계층의 국민에게 도움이 집중되도록 한다는 논리다. 이런 차등지급은 사회적 위험에 처한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필요가 있는 국민에게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복지와 사회부조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초기에 '소득 하위 70%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한 정부가 옳았다는 말이다. 일단 지급한 후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는 것은 여야의 선거공약 때문에 지원금 지급이 억지 춘향식으로 결정되었음을 방증한다.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해야 평등의 원리가 충족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게 평등의 기본원리다. 모두에게 지급하느라 당장 생계가 막막한 국민에게 제대로 지원을 못한다면 오히려 형평에 어긋나는 결과가 된다. 모든 국민이 내는 세금이니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비약이다.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부담하지만 아파서 병원에 갈 때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건 당연하다. 같은 맥락에서 지자체마다 재난지원금이 다른 것도 지방자치 원리로 볼 때 근본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지자체마다 형편이 다르고, 재정의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예컨대 경기도는 1인당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1조360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재난관리기금, 재해구호기금, 지역개발기금을 모두 쓰고 소액금융지원 500억원도 삭감해서 재원을 마련했다. 현명한 처사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여러모로 초유의 일이다. 시급한 현안인 방역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해야 할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긴급재난지원금 역시 큰 숙제를 안기고 있다. 재정투여 대비 효과를 면밀히 검증하고 그에 대한 분석과 대응책을 내놓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국민들 역시 지원금 기부 고민을 넘어 정부와 지자체의 현명한 재정운용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과제를 안게 됐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를 던져서는 안된다. 튼튼한 밧줄을 던져야 마땅하다.
모든 사람에게 지푸라기를 나눠주느라 밧줄을 만들 수 없다면 온당한 일이겠는가 말이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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