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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우리는 다시 전부를 원한다"

[파이낸셜뉴스] 2008년 금융위기후 이탈리아 투린 공업고등학교의 벽에는 “당신들은 우리에게서 너무 많이 빼앗아갔어. 이제 우리는 다시 전부를 원한다'라는 낙서가 새겨져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전부를 원하는 것은 지금까지 빼앗겼던 대중의 권리와 결정의 공간을 탈환하자는 요구다. 그러나 대중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고 이전처럼 자본주의의 수면아래 잠복해 있다. 2차세계 대전후 연합국들은 승전이라는 권력의 힘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의 새판을 짰다.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안정을 꾀하는 일련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지만 거기까지였다. 사회적 합의는 오로지 고용중심적 위주로 구성됐고 정작 대중이 스스로 결정하고 참여하는 공간은 배제됐다. 본격적으로 자본이 주도하는 시스템에서 살아가야 할 운명을 맞았다.

21세기 맹위를 떨치던 늙은 자본주의의 위력이 쇠퇴할 조짐을 보이자 디지털로 표상되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만개했다. 소위 '백수의 시대"라는 대량 실업의 시대가 목전에 다가왔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빅데이터는 그 전주곡이다. 누구든 예외는 없다. 정부예산으로 힘겹게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한계점에 도달했다. 지난 산업화 시대의 알고리즘은 수명을 다했다.사용자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고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자본이 모이는 것도 그래서다. 산업자본과 달리 플랫폼 기업에서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아니라 수확체증의 법칙이 전면화된다.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이 아닌 무한대의 데이터를 기초로 이윤을 창출해서다. 데이터의 집적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경제는 산업화의 지층을 뚫고 균열을 내며 사회를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사회의 모든 이윤은 디지털로 집결중이다. 당연히 전통적 고용구조도 이같은 변화의 소용돌이속에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공공에서 예산을 투입하든 민간에서 혁신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앞으로 언감생심이다.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경제의 새 판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우리에게 무척 낯선 기본소득은 사회적 보호장치에 너무나도 자주 부족했던 '보편성'과 '무조건성'이라는 논리를 더해 제도의 골조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조건을 달지말고 사회적 부의 선분배와 무조건적 지급을 말한다.. 기실 모든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가 축적한 지산의 외부효과다. 이전 세대들의 축적된 지식과 노동에 의해 성취된 부라는 관점에서 소득의 분배를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그렇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의 출발점이자 대량실업을 최소화할수 있는 방책으로 꼽힌다. 눈앞에 재앙이 닥치고 있는데도 고용체제를 과거와 동일하게 유지한다는 발상은 너무 낭만적이다.

칼폴라니가 말한 것처럼 경제가 다시 정치에 착근하는 것. 모든 중대한 경제적 결정은 정치적 선택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시장은 시장고유의 논리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재화와 서비스를 어떨게 교환할지에 관한 정치적 결정의 결과다.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소득과 일자리를 경제적 생산성 추세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강제한다. 더 큰 문제는 일자리와 임금이 부의 창출과 분리되면서 노동의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부가 사회 전체적으로 공유되지 않고 일자리가 없어지면 지식 주도의 혁신경제가 아무리 장밋빛 미래를 약속해도 그 경제는 영속할수 없다.

코로나19로 불거진 암물한 미래의 모습은 기본소득이라는 지난 역사적 과제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 다만 플랫폼 기업들이 흡혈귀처럼 빨아들이는 빅데이터의 소유권은 또 다른 쟁점이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데이터는 정작 소유권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생략됐다. 데이터 소유권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플랫폼 자본주의의 운명이 결정된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