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나의 아버지와 일자리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4 17:14

수정 2020.05.14 18:01

[기자수첩] 나의 아버지와 일자리
아버지는 부천에서 20년 가까이 과일 장사를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속셈학원도 다니고, 가끔은 동네 서점에서 '소년점프'도 샀다. 단칸 월세방에서 방 2개짜리 전세로, 이후에는 빌라로 이사했다. 이 기간 동네 서점이 사라졌고,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과일가게도 문을 닫았다. 새 일을 찾을 동안 아버지는 수입도, 기운도 없었다. 아버지는 이후 경비,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렸다.
이후 일을 그만두자 아버지는 부쩍 늙기 시작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했다. 이전 정부가 추진하던 성과연봉제 도입과 이를 통한 '쉬운 해고' 정책에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량실업이 현실화되자 취임 3주년 연설에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말했다.

고용보험은 일을 하는 사람이 보험료를 내면 그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 재취업할 수 있도록 실업급여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2700만 근로자 중 절반 넘는 1400만명은 미가입 상태다. 근로자와 회사가 보험료를 반씩 내는데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파는 보험 판매원, 식당 여러 곳의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 노동자 등은 회사를 특정하기 어려워서다.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로 불리는 이들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 국회에서 예술인과 특고직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려 했지만 야당이 경영계의 부담을 이유로 반대해 특고직은 빠졌다. 1400만 고용보험 미가입 근로자 중 5만명의 예술인만 포함됐고, 200만명 특고직은 빠진 '반쪽짜리' 법안이 됐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인공지능, 자동화에 따른 기술적 실업이 화두가 될 것이다. 대안으로 일하지 않아도 전 국민에게 돈을 주는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일을 하는 행위 자체를 과소평가한다. 아버지가 일을 할 때 더 활기찼던 것은 일의 결과인 소득과 별개로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최소 안전판인 고용보험 확대도입이 미뤄진 것이 아쉽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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