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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우주탐사 경쟁하듯… 공조 외면한 美·中 백신전쟁 [글로벌 리포트]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7 15:47

수정 2020.05.17 19:18

정상들 '코로나 공조' 외쳤지만
트럼프 '초고속 프로젝트' 가동
美업체 이미 이달 2차시험 허가
가장 먼저 개발 뛰어든 中은
완성품 없이 '성공'소문만 무성
유럽, 주도권 빼앗길라 초조
현재 공식 개발중인 백신 8개중
100% 유럽자본 들인 것은 1건뿐
佛업체는 "美에 우선공급" 파장
백신개발을 후원한 미국에 우선공급 계획을 밝힌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
백신개발을 후원한 미국에 우선공급 계획을 밝힌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
【 서울·베이징=박종원 홍창기 기자 정지우 특파원】 "각국 정부와 국제조직은 코로나19 백신을 신속히 대량생산해 세계 모든 국가가 무료로 구할 수 있게끔 보장하라."

지난 14일(현지시간) 세계 전·현직 정상 140명은 유엔 웹사이트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국가주의를 내세우지 말고 세계가 상생하자는 호소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공허하기만 하다. 특히 코로나19 책임 공방으로 '신냉전'에 들어선 미국과 중국은 돈이 얼마가 들든지 상관없이 상대보다 먼저 백신을 개발해 정부의 유능함을 입증하고, 백신외교를 통해 국제적 신뢰와 영향력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 투자사인 롱카인베스트먼트를 세운 브레드 롱카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현재 백신개발 경쟁은 마치 미국과 소련의 우주탐사 경쟁과 비슷하다. 냉전시대를 다시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냉전시대 우주탐사 경쟁하듯… 공조 외면한 美·中 백신전쟁 [글로벌 리포트]

■美, 전례 없는 국가주도 개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올해 연말까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초고속 개발팀'을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AFP통신과 CNN방송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할 수 있다면 연말까지 백신을 얻기를 바란다"면서 "아마 그 이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백신개발 대표를 지낸 몬세프 슬라위를 최고 책임자로, 미국 육군 군수사령관인 구스타프 페르나 장군을 최고운영책임자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작전을 2차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꾸려진 '맨해튼 프로젝트'에 비유했다.

트럼프 정부의 조치는 과거 백신 개발을 민간에서 주도했던 현지 업계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집계에서 세계적으로 78개의 백신이 공식 개발 중이며 이 중 임상시험에 들어간 약제가 8개라고 밝혔다. 8개 가운데 2개는 미국 업체 제품으로 개발 속도는 타국에 비해 빠르다. 가장 완성에 가까워진 백신은 모데나가 개발 중인 '전령RNA(mRNA)-1273'으로 이미 3월에 세계 최초 1차 임상시험에 돌입했고, 이달에 2차 시험 허가를 받았다. 업체 측은 오는 6~7월에 3차 시험을 예상하고 있다. 다른 업체인 이노비오 제약도 지난달 자사의 'INO-4800'을 가지고 1차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CNN은 지난 13일 미국 국립보건원(MIH)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초고속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약업체들을 모아 3차 임상시험을 공동으로 진행, 개발기간을 단축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제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中, 1월부터 백신 연구 박차

중국은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된 지역인 만큼 백신 개발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중국일보는 발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에 봉쇄령이 내려진 사흘 뒤인 1월 26일에 "중국 질병통제센터 쉬원보 소장이 성공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분리해 백신 개발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즈음 홍콩에서 이전에 개발했던 인플루엔자 백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백신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상 코로나19 백신을 만든 첫 지역이다. 다만 임상시험까지는 1년여가 걸릴 것이라는 전제가 달렸다.

중국도 곳곳에서 백신 개발에 착수했다. 상하이 퉁지대학이 바이오기업과 손잡고 백신 개발을 시작했고, 전염병 전문가인 리란쥐안은 이르면 1개월 내에 백신 제조에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도 중국 질병통제센터 등을 잇달아 찾아 백신 개발을 독려했다. 이후 중국 과학기술부 생물센터 등에서도 백신 개발에 들어갔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으며 2월 중순에는 저장 과학기술부가 첫 코로나19 백신으로 동물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이어 중국 톈진대는 경구백신 개발에 성공했으며 임상시험을 추진 중이라고 2월 말께 주장했다. 3~4월에도 중국 백신 연구진은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착수하면 곧 최종 승리의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백신 개발 착수나 성과 보도는 중국 매체를 타고 끊임없이 세계로 홍보됐다. 그러나 중국 제약사들은 무성한 개발 소식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완성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는 지난 13일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가 미국의 백신 개발정보를 해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美中에 휩쓸릴까 초조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중국 다음으로 겪은 유럽도 백신 개발에 몰두하고 있지만 미·중에 비하면 속도가 느리다. WHO가 확인한 임상시험 백신 8개 가운데 2개가 유럽에서 개발되고 있으나 온전히 유럽 자본으로 탄생한 백신은 영국에서 옥스퍼드대학과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개발한 '차드옥스1(ChadOx1 nCoV-19)'가 유일하다. 나머지 하나는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BNT 162'으로 미국 제약사인 화이자와 공동개발한 것이다. 첫 임상시험 역시 이달 미국에서 진행됐다. 바이오엔테크는 지난 3월 중국 포선제약과도 코로나19 백신을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은 이처럼 백신 개발에서 뒤처지자 훗날 백신 주도권을 쥔 미·중에 끌려다닐까 우려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 3월 트럼프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연구하는 자국 제약사 큐어백을 인수하려 한다며 미국의 백신 독점 시도를 규탄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3일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가 코로나19 백신 완성 시 가장 먼저 후원한 미국에 백신을 먼저 공급하겠다고 밝히자 격노해 사노피 경영진을 소환키로 했다.
사노피는 GSK와 손잡고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백신 출시를 목표로 잡고 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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