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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人터뷰] "이더리움 등 외산 플랫폼 종속 우려"… 국산 기술개발 절실

김소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5 09:19

수정 2020.05.27 17:42

ETRI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 인터뷰
오진태 책임연구원 "외국 플랫폼 의지하면 한계 봉착할 것"
ETRI, 자체 분산 합의알고리즘 확보 "확장성·보안성 잡았다"
"PoN 사업화 위해 '블록체인 중장기 개발사업' 반드시 필요"
김기영 센터장 "中 이미 자체 플랫폼 출시, 한국도 경쟁력 높여야" 
[파이낸셜뉴스] "블록체인 사업을 하는 국내 중소기업은 굉장히 많지만, 공통적으로 외산 플랫폼에 애플리케이션(앱)를 얹어서 장사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고난이도 작업인데다 당장 돈이 되는 사업도 아니기 때문에 기업들이 일제히 서비스 개발에 몰리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정부 출연연구 기관의 역할은 국내 기업들이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든든한 국산 플랫폼 개발의 디딤돌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ETRI. 토종 합의 알고리즘 개발

김기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 센터장(왼쪽)과 오진태 ETRI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 책임연구원
김기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 센터장(왼쪽)과 오진태 ETRI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 책임연구원

25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 오진태 책임연구원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ETRI 본관에서 파이낸셜뉴스 블록포스트와 만나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블록체인 사업이 이더리움이나 하이퍼레저 패브릭 같은 외산 플랫폼에 의지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며 장기적으로 이는 플랫폼 종속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 우려했다.

함께 인터뷰를 진행한 김기영 ETRI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 센터장 역시 "최근 중국은 정부 차원의 블록체인 플랫폼 'BSN(블록체인 서비스 네트워크)'을 공개하며, 자국 기업을 위한 물리적 사업 환경을 직접 구축했다"며 "ETRI 역시 한국 기업들이 사업화 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 핵심기술을 확보할 것"이라 밝혔다.

ETRI는 이미 자체 합의알고리즘인 논스증명(PoN, Proof of Nonce) 기술을 확보해 놨다. 지난 2018년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블록체인 기반 고신뢰 정보거래 플랫폼 기술개발' 과제를 통해 토종 분산합의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이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초당 거래 처리량이 각각 7개, 15개에 불과하지만, ETRI의 PoN 기술은 초당 9000개 가량의 거래를 처리하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초당 9천개 거래 처리 가능
김 센터장은 "블록체인이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작업증명(PoW), 지분증명(PoS), 위임지분증명(DPoS) 등 기존 합의알고리즘이 탈중앙화 시스템 상에서 확장성과 보안성 두 토끼를 동시에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PoN 기술은 데이터 분산 처리 환경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거래를 빠르고, 안전하게 처리하는데 방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지난 2년간 PoN 기술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끈 오 책임연구원은 "PoN은 블록 생성 과정에서 노드끼리 서로 동의를 구하는 '비경쟁 합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문제는 노드가 많아지면 합의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것"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합의 노드를 랜덤으로 뽑은 후 그 가운데 블록 생성에 악의를 가진 나쁜 노드가 33% 이상 넘어갈 확률을 제거한 것이 PoN의 특징"이라 설명했다. ETRI는 PoN 기술에 대해 한국과 미국, 중국 등 3국 특허를 확보했다. 일본과 스위스는 특허 출원을 진행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 경쟁력 강화 시급"
ETRI 자체 블록체인 합의알고리즘 논스증명(PoN) 시연 일부./ 사진=ETRI
ETRI 자체 블록체인 합의알고리즘 논스증명(PoN) 시연 일부./ 사진=ETRI

김 센터장과 오 책임연구원은 실제 PoN을 통한 블록체인 서비스 사업화를 위해선 '블록체인 중장기 기술개발 사업'이 수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TRI가 블록체인의 핵심 원천기술인 합의알고리즘만 확보한 단계인데, 실사용이 가능한 플랫폼 단계까지 발전하려면 다양한 기술 개발과 활용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총 7년간 국가주도의 블록체인 기술개발 사업을 하겠다며 지난 2018년 5600억원 규모 블록체인 개발 사업을 추진했으나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당시 예타를 진행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결과 보고서를 통해 "장기간 R&D 추진을 통해 확보하고자 하는 핵심 원천기술의 실체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하며 "블록체인에 대한 모든 활동을 하나의 사업으로 기획하기 보단, 기초연구, 일자리, 창업지원 등 관련 사업과 연계 추진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를 반영해 예타 기획서를 전면 수정해 지난해 11월 다시 예타를 신청했다. 당초 7개에 달했던 블록체인 활용 실증 서비스는 2개로 대폭 줄이고, 주요 원천기술 개발 사업은 12개로 늘렸다. 서비스 보단 고성능 분산합의 기술, 스마트컨트랙트(조건부계약체결) 등 앞쪽 핵심기술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쏟겠다는 의미다.

예타 결과는 내달 발표될 예정이다.


ETRI 또한 올해 2월 블록체인기술연구센터를 신설해 블록체인 핵심기술 고도화를 위한 제반 여건을 갖춰가고 있다. 오 책임연구원은 "안드로이드 경우 처음엔 기업에게 다 가져다 쓰라 했지만, 실제 사업화에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기업에게 엄청난 개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와 마찬가지로 외산 플랫폼에 앱을 얹어 사업하겠다는 대부분의 국내 블록체인 기업 전략은 향후 비즈니스가 성공 궤도에 올라설때부터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단일 기업이 건드릴 수 없는 블록체인 코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출연연의 역할"이라며 "아직 선진국도 고성능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충분히 경쟁에 도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rk@fnnews.com 김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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