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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경제방역'과 한국판 뉴딜정책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0 16:56

수정 2020.05.20 16:56

[fn논단] '경제방역'과 한국판 뉴딜정책
세계 경제는 바이러스 사태가 종료돼도 이전으로 복원되기는 어렵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던진 화두다. 개방적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기엔 찜찜하고, 바이러스 사태도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졌다. 상당 기간 위험회피 모드에 머물면서 소비는 미루고 저축은 늘려나갈 것이다. 치료제나 백신 개발 등 방역체계가 완벽해지지 않고는 이런 불안 고리를 끊기 어렵다.


불확실성 상시화로 경제예측은 어려워졌다. 세계적 위기관리 전문가인 미셸 부커는 저서 '회색 코뿔소가 온다'(2016년)에서 불확실성 시대에도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에도 신호는 있다고 했다. 위기신호가 미약한 것이 아니라 신호에 대한 반응이 약해 심각한 위기에 효과적 대응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개연성이 높고 분명한 위기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익숙해진 행동을 바꾸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우리 산업에 대한 위기신호가 쌓여왔다. 재래산업의 경쟁력 하락은 빠르고, 신산업은 착근이 지연되는 등 산업역량은 쇠락해왔다. 게다가 양질의 노동수요가 줄어 청년실업률은 높지만, 힘든 작업 현장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가동이 어렵다. 기업 3곳 중 1곳은 이미 한계기업화됐다. 산업 현장의 경영자와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 간 상반된 견해차가 워낙 커 타협적 대책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 제조업의 사막화가 우려됐다.

이번 사태로 세계 산업에 불가역적 변화가 예상된다. 최근 중국에 부품기지를 둔 세계 기업들이 부품을 적시 조달하지 못해 조업차질을 빚었다. 공장 봉쇄나 국가 간 이동제한 조치로 피해를 본 기업들은 글로벌 일변도 조달에서 벗어나 로컬 비중을 높였다.

나아가 해외진출 생산업체의 자국회귀현상(리쇼어링)도 진행 중이다. 불확실성 시대에 효율성과 코스트 개념이 달라졌다. 물류이동이 제약될 때는 물자의 적기 조달이 관건이다. 재고 수준을 늘리거나 조금 비싸도 부품이나 생필품을 로컬에서 확보하는 등 안전한 조달 네트워크를 갖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순효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수출입 의존도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국내 생산역량 확충과 고용흡수력 확대라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해외시장이 축소되고, 중국을 경유한 수출경로도 단기에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늘어난 코스트의 내재화가 새로운 경쟁력 과제다.

획기적 처방 없이 경기회생과 잠재성장률 회복은 어렵다. 공적자금은 유한해 가계나 기업의 재기를 돕거나 금융위기를 차단하기에도 벅차다. 국제분업 체계의 변화, 디지털경제로 전환 가속화, 복원력 상실 기업의 구조조정과 보건친화 수요의 증가 등 과제가 산적했다.

이에 대응할 공급역량의 혁신은 기업의 몫이다.
제조업의 르네상스에 기업이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자율적인 산업생태계 복원과 국제 수준의 경영여건 회복이 절실하다. 특히 노사 간 상생의 사회적 대타협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판 뉴딜정책도 이런 프레임 내에 둬야 결실을 맺는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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