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심정지된 응급환자도 되살린다.. "1분 1초 매순간이 골든타임"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박지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7 17:19

수정 2020.05.27 17:20

위기의 순간 생명 구하는 응급구조사
성수대교·삼풍 붕괴 사고 이후
1995년 처음 생긴 '응급구조사'
지금은 남극기지서도 활동
응급상황 아닌데 신고하거나
길 비켜주지 않는 차량 여전
생명 다루는 일, 좀더 지지해주길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성동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강신준 응급구조사가 현장에 출동해 공원에서 쓰러진 한 시민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성동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강신준 응급구조사가 현장에 출동해 공원에서 쓰러진 한 시민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성동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강신준 응급구조사. 사진=박범준 기자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성동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강신준 응급구조사. 사진=박범준 기자

"생명의 마지막 끈을 잡고 있는 위기의 사람들이 그 끈을 놓지 않도록 응급처치해 생명을 보존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분 1초를 다투는 촌각의 순간. 절체절명 응급상황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생명의 길을 인도하는 이들이 있다. 응급구조사들이다. 응급구조사는 갑작스러운 사건사고 현장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들을 제일 먼저 찾아가 '골든타임'을 사수해 이들을 구조하고 이송하는 업무를 주로 맡는다.
사건 현장에서 놀란 이들을 안정시켜주는 상담의 역할도 소화해 낸다.

응급구조사란 직업은 우리나라에 1995년 처음 등장했다. 1994년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이듬해 연달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사건발생 시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됐고,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이 탄생된 것이다.

■'골든타임' 사수로 생명 불어넣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성동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강신준 대원(사진)은 응급구조 일을 수행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는 베테랑 응급구조사다. 강 대원은 응급구조사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아무래도 응급구조사 일을 해오며 가장 보람된 순간은 꺼져가던 생명을 다시 살린 일"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역시 생명을 구한 일이다. 공원에서 한 남성이 쓰러졌다는 신고가 들어와 바로 출동해 현장에 가보니 이미 남성은 심정지 상태였다.

강 대원은 지체없이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로 응급처치를 했고, 다행히 남성의 숨은 다시 돌아왔다. 다시 생각해도 진땀 나는 순간이었다.

강 대원이 살린 남성은 기관사 분으로 건강을 되찾은 후 중학생 자녀들, 부인과 함께 찾아와 강 대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강 대원은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남성을 생명을 살리고 그가 일상을 회복해 가족들과 함께 인사를 하러 온 모습을 보고는 생명을 구한 것을 실감하며 벅찬 감정을 느꼈다"며 "그 분과는 제가 남극으로 가기 전까지 의형제를 맺으며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생명을 구하며 느껴지는 보람은 그를 남극으로까지 이끌었다. 강 대원은 응급구조사로서 극한상황에 도전하고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해내고 싶은 열정을 누르지 못해 결국 남극 안전대원에 자원했고, 선발됐다. 그는 "세종기지와 달리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는 긴급상황 시 인근 국가로 이송해갈 비행기가 내릴 시기가 극히 제한돼 있다"며 "그럼에도 진짜 응급구조사로서 극한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시험해 보고 싶었다"며 도전 당시 심경을 전했다.

강 대원은 "한 번은 대원들과 바다표범이 새끼를 낳을 시기에 야외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온순하던 바다표범이 그날 따라 대원들에게 돌진을 해 위험한 일이 있었다"면서 "순간 혼비백산해 안전지대로 피신해 큰 일은 없었지만, 응급구조를 하러갔는데 우리가 응급한 상황에 놓일 뻔했다며 후에 웃기도 했지만 여전히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회상했다.

■"응급차 보면 비켜주세요"

강 대원이 처음 응급구조사 일을 시작하던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는 국민들의 인식이나 제도 그리고 장비들이 많이 개선됐다.

그럼에도 그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무엇보다 응급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는데 도로 위에서 차량들이 쉽게 비켜주지 않거나, 현장에 출동했는데 되레 폭언이나 폭력을 당하거나, 응급하지 않은 상황에 신고를 해 인력이 낭비되는 상황들이 지금도 발생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로 가끔 신발이 지붕에 넘어가는 등의 일로 응급구조 신고를 하거나, 출동 후 최선을 다해 달려갔는데 현장에서 늦게 왔다며 멱살을 잡히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 응급구조 인력이 정말 촌각을 다투는 응급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전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우선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환경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과 직결되는 만큼 단순한 인식 개선이나 호소를 넘어 제도적인 뒷받침 마련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차의 진입에 대해 강 대원은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상황이 수월해졌지만 아직까지도 출동을 나갈 때 차량들이 쉽게 비켜주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십수년째 호소만 하고 있는데 외국처럼 응급차량을 비켜야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그러지 않을 시 제재를 가하는 등의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응급 상황에서 신고를 한 후 가능한 경우 보호자들은 응급처치를 하며 기다리고, 여유가 된다면 찾기 힘든 주택가의 경우 주변 보호자 한 명이 나와 응급구조대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면 '골든타임' 사수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강 대원은 "저는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를 선진국처럼 발전시켜야 하는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일을 해왔다"며 "이 직업을 택한 사람들, 생명을 다루는 응급구조사라는 사람들의 고귀한 뜻을 지지해 주시고, 응급구조사가 더욱 응급구조사답게 현장에서 생명의 최일선 보루로 있을 수 있게 국민들께서 응원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면서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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