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정부의 소비'도 관리가 필요하다

권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1 17:33

수정 2020.06.01 17:33

[기자수첩] '정부의 소비'도 관리가 필요하다
누군가 대학교 재학 시절만큼 지출을 줄이라고 한다면 줄일 수 있을까.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만으로도 벌써 초과다. 그런데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 하드 아이스크림 대신 콘 아이스크림을 집어드는 소소한 '탕진잼'에 맛들여왔다. 이미 소비에 중독된 내게 이제 와서 지출을 반으로 줄이는 일은 참 어렵다.

회귀가 어렵다는 점에 있어선 정부의 소비(재정지출)도 내 소비와 다를 바 없을 거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를 '경로 의존성'으로 설명했다. 그는 한번 늘린 재정은 쉽게 줄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의 세출·세입 추이를 그린 그래프를 제시했다. 이 그래프는 '악어의 입' 모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악어의 입이 벌어지듯, 세출은 급속히 증가하고 세입은 줄어드는 모양새다.

재정당국은 "이럴 때 쓰라고 모아둔 재정여력 아니냐" "쓸 때는 써야 한다"는 질타를 받으면서도 "재정건전성도 중요하다"는 말을 꿋꿋이 외친다. 코로나19로 당장의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버거운 사례가 속출하는 지금, 정부가 지출을 확대해 이들을 떠받치는 게 맞다.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선별적 긴급재난지원금 지원을 주장했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위기상황엔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되면 회귀할 수 있게끔 지출 수준을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약 반세기 만에 3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예정이다. 그것도 단일 규모로는 역대 최대인 30조원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차, 2차를 모두 합하면 못해도 50조원 이상이다. 이미 2차 추경 편성 과정에서 건전성 지표는 심리적 마지노선(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4%)을 넘겼다.

늘어난 재정 규모를 되돌리는 것은 어지간한 작심이 있지 않고선 대단히 어렵다. 올해 재정당국은 재정준칙을 세워 그 '작심'을 보여줘야 한다. 준칙의 엄격한 정도는 둘째 문제다.
재정준칙 그 자체로 정부는 확대된 재정이 경로의존성을 띠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대외적으로도 재정건전성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한국도 일본의 '악어의 입' 그래프를 재현하게 될 것이냐는 정부의 작심에 달렸다.

ktop@fnnews.com 권승현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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