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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n번방 사건과 집단관음증 사회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2 17:10

수정 2020.06.02 17:10

[fn논단] n번방 사건과 집단관음증 사회
인간의 생명이 오늘날처럼 마땅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되지 않는다. 만약 흑사병을 계기로 노동의 가치가 재발견되어 산업혁명이 촉발되고, 르네상스와 종교혁명으로 인간의 본질이 다시 인식되고, 경제발전에 따라 생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회계층이 확대되는 등 역사가 순조롭게 발전하지 않았다면, 인간 대우에 관한 현재의 당위적 양상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로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2년 처형되면서 유언으로 "나는 전쟁 규칙과 정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재판과정을 지켜본 유대인 출신의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명한 '악의 평범성' 이론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 아이히만의 악의 근원은 '생각 없음'이라고 갈파했다.

온전한 양육의 대상이어야 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인간성 상실의 극치를 보여준 소위 n번방 사건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안긴 사실의 하나는, 범인이 평범한 청년들이고 단순히 재미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는 점이다. '악의 평범성'이 자연스레 연상되지만, 이런 병폐는 사회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영국의 유명한 '엿보는 톰'은 시민의 세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영주 부인 고다이버의 희생을 악용한 고약한 사내였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관음증이 집단에 가려진 익명성에 힘입어 노골적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중세 서양에서는 전염병이나 흉년 등 신앙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불행이 닥쳤을 때 늙은 과부 같은 약자를 마녀로 몰아 잔인하게 고문하고 화형에 처하는 식으로 희생양을 만들어 종교지도자들이 대중의 비난을 모면하곤 했다. 그런데 허기 속에 메마른 일상을 보내던 당시 이렇게 잔혹한 의식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여서, 영주 같은 권력층에게는 편안한 좌석이 제공된 가운데 주민들이 몰려와 비웃고 즐겼다고 한다. 고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을 집행하는 망나니의 칼질에는 많은 구경꾼이 함께하곤 했다. 다행히 모두 르네상스시대 인간 재발견이 있기 전의 일이다.

그런데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는 오늘날 한국에서 중세 집단관음증을 연상케 하는 기행이 이어지는 것은 웬일인가. n번방 사건뿐 아니라, 연예인이 관련된 사건마다 떼지어 달려드는 인터넷 댓글이나 신문지상을 매일같이 도배하는 각종 사건·사고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은 일까지 따라다니며 속살까지 신상털기에 나서는 이른바 네티즌 수색대의 심리에 그런 면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치열한 생존경쟁에 지쳐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는 일상 속에서 시민들은 스포츠 게임이나 고전음악처럼 제도화된 문명에서 더 이상 위안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희생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일탈의 스릴에 기뻐하는 n번방 운영자들 모습은, 숨가쁜 압축성장으로 서구와 같은 인간 재발견의 경로를 뛰어넘어 경제외형만 커버린 속에서 엉뚱한 탈출구를 찾는 우리의 안타까운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똑똑하다' 외에 '아프다'는 뜻도 갖는 영어단어 스마트(smart) 폰에서 오늘도 짜릿한 자극을 찾아 헤매는 군중들은 저마다 '생각 없음'을 두르고 있다.
우리에게 21세기 인본주의가 빨리 자리잡기를 소망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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