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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검찰 개혁 핵심은 수사 독립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4 17:48

수정 2020.06.04 17:48

[여의도에서] 검찰 개혁 핵심은 수사 독립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검찰이 뭐하는 곳인지 물어봤다. 대뜸 '검찰 개혁'이란 말이 나왔다. 하긴 여기저기서 검찰 개혁이란 말들이 쏟아지니 마치 무슨 사자성어처럼 들렸나보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의 관심이 다소 멀어졌지만 문재인정부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던 '검찰 개혁' 작업은 집권 4년차를 맞아서도 계속되고 있다.

개혁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 개혁에 있다. 특히 검찰 인사는 해당 보직의 임기 문제나 인력이동 가능성이 늘 있어 사람의 선의에만 기대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검찰 제도 개혁의 핵심은 권력자로부터의 '인사권 독립'이다. 한때 법조계에서도 검사장 직선제 등의 방안이 거론됐지만 여론의 호응이 낮아 공론화 과정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인사권 독립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꼽히는 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환경 조성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점이자 검찰 개혁의 요체다.

이는 전적으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결단이 전제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도 보지 말라"고 엄정한 수사를 주문했다.

지극히 원론적 얘기지만 윤 총장 전임인 문무일 총장 시절인 지난해 초 청와대를 겨냥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계기로 검찰에 대한 여권의 '압박'을 떠올려보면 대통령의 이 발언은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한 청와대 핵심 인사는 '검찰이 이전 보수정부 때와는 다른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SNS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해당 발언이 나온 지 7개월이 지나 검찰은 한마디로 '쑥대밭'이 됐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위 의혹에 대한 사정작업이 한창이던 때 청와대는 "검찰은 성찰해주기 바란다"며 공식적으로 경고성 메시지를 전하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검찰로서는 여기까진 불행의 서막이었다.

핵심 참모 개인비리 의혹을 넘어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수사지휘부는 사실상 '유배'나 다름없는 한직으로 일제히 밀려났다.

검찰청법상 인사 전 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한 절차도 지키지 않으면서 직권남용 논란까지 제기됐다. 검찰 수장으로선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입건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몸소 보여준 김수남 전 검찰총장 이후 역사가 뒷걸음친 셈이다.

검찰고위직 인사 직전 검찰 제도개혁의 핵심으로 정권이 여겼던 고위공직자비위수사처 설치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검경수사권조정안의 국회 통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사실상 검찰 개혁이 마무리된 셈이지만 정부는 개혁을 명분으로 문책성 인사를 통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데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한 점의 의혹 없는 수사를 통해 정권의 도덕성을 확인시켜 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것이다.


'인사참사' 5개월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검찰 내부에선 '청와대가 숨기고 싶은 게 많은 것 아니냐'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시각이 적잖다. 고대 그리스 민주정을 확립한 페리클레스는 "언제든 재난은 찾아온다.
거기에 휘말릴 때마다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너무 불안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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