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기본소득', 재난지원금처럼 준다면 171조…한 해 국가예산 3분의 1

뉴시스

입력 2020.06.05 06:00

수정 2020.06.05 06:00

가보지 않은 길 '기본소득'…정치권 띄우고 정부·靑은 선긋기 기존 복지제도 대체 않고 '얹어주기' 할 땐 재원 '상상 이상' 단순 증세 수준 뛰어넘어…기존 복지·연금 제도 대수술 필요 전문가들 "구체화는 시기상조지만…논의 시작 자체는 의의"
(출처=뉴시스/NEWSIS)
(출처=뉴시스/NEWSIS)

[세종=뉴시스] 위용성 기자 = 아직 세계 어디서도 뚜렷한 성공 사례가 없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퍼져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본소득은 자산·소득 수준이나 노동 활동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주는 돈이라 결국 문제는 재원이다. 큰 폭의 증세는 물론 기존의 복지·연금제도를 완전히 대수술해야 하는 차원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선점 경쟁이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며 운을 띄웠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한국형 기본소득인 'K-기본소득' 도입을 집중 검토하겠다"며 가세했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만간 기본소득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설 계획이다.


정치권과 달리 정부는 기본소득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합동브리핑 당시 "아직 우리 여건상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기자들에게 "(해외에서도) 사례가 많지는 않다"며 "구체화 수준에서 논의하기는 이른 것 같다"고 전했다.

정부가 기본소득 이슈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역시 재원 문제 때문이다.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한시적으로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주는 데 14조2448억원이 들었다.

기본소득으로 이 정도 수준을 준다고 가정하고 매월 정기적으로 나눠준다면 연간 170조9376억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는 올해 본예산 총지출 규모 512조3000억원의 33%에 달한다. 이는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 전체 규모(180조5000억원)와도 맞먹는다.

복잡한 절차와 사각지대 문제를 안고 있는 기존 소득보장체계를 없애거나 축소한 뒤 이를 대체하는 것이 기본소득의 기본 개념이다. 때문에 기존 복지제도를 일정 부분 남겨둔 채 이 같은 수준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하면 소요 재원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에 달할 수 있다.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번에 시행된 긴급재난지원금을 두고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을 위한 논의의 실험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긴급재난지원금은 경기 부양을 목표로 도입됐고 무엇보다 일회성에 그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논의 초기 당시 일부 적극적이었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정부가 '지원금'이라 명명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미래 사회로 갈수록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소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실업 기간이 길어지는 추세에서 현재의 전통적 사회보장체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논의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받는 기존 복지·연금제도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채 기본소득 화두가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만 등장하는 데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서구 복지 선진국에서조차 제대로 배울만한 성공 사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2016년 스위스에서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 투표를 했지만 76.6%가 반대해 부결됐다.
특히 증세와 현재 복지제도의 철폐 가능성에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복지 선진국에서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인데 아직 우리는 복지제도가 비효율적이고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은 수준"이라며 "복지제도를 먼저 잘 갖추고 재정 투입이 효율화된 이후에 이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기본소득을 도입할 것인지 논의한다면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는 과거보다 확실히 소득보장제도가 확대돼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농민수당이나 청년수당 등 일부 계층을 대상으로 먼저 도입한 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우리는 아직 기본적인 복지제도 자체도 문제가 많기 때문에 당장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도입하게 되면 혼란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up@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fnSurvey